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9 06:00 (월)
[집중취재]여론수렴 '공청회'부터 다시 시작해야

[집중취재]여론수렴 '공청회'부터 다시 시작해야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6.25 00: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약대 6년제' 실체를 전격 해부한다(4)

"약사도 의료진?"

약사들이 약대 6년제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는 학제 개편에 따른 새로운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설된 과목은 ▲임상약학 (12학점) ▲약국관리·경영학 (2학점) ▲약국실무이론(5학점) ▲약국실무현장교육 (10학점) ▲의료기관 이론 (5학점) ▲의료기관 실무교육 (10학점) 등이다. 주로 실무·실습과 관련된 과목들이다. 이는 대한약학대학협의회가 약대 6년제의 당위성으로 꼽은 '임상약사 양성 및 실무교육 강화를 통한 전문직 직업능력 개발'과 맥을 같이 한다.

임상약사, 즉 병원약사는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의료진의 일원으로 약사 업무를 수행해야하므로, 개국 약사에 비해 다른 보다 질높은 교육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병원에서 일하는 임상약사는 전체 면허약사의 2.8%, 신고약사의 5%에 불과하다. 결국 3~5명의 '잘 배운' 임상약사를 배출하기 위해 위해 90명이 넘는 약대생들이 필요없는 공부를 2년씩이나 더 해야 한다는 얘기다.

만일 약대 6년제가 임상약사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면, 일반 동네 약국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도 2년간의 전문교육이 추가로 요구된다는 주장인데,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진정 수준높은 임상약사의 양성을 원한다면 현재 학제를 유지한 상태에서도 졸업 후 연수나 대학원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충분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갈 필요 없어요"

'일반의약품 활성화'는 약계의 오래된 주장이자 숙원이다. 환자들이 굳이 불편하게 병·의원에 갈 필요없이, 약국에서 즉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만으로도 왠만한 경질환은 충분히 치료가 된다는게 주장의 핵심이다.

의약분업 이후 일반약 판매를 위한 약사들의 노력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다. 분업 이후 병의원과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약국들은 처방전을 구경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고, 일반의약품의 적극적인 판매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사활을 건 일반의약품 매약행위 결과 의약분업 시행 1년만인 2001년 조사(서울대 송호근교수)결과 국민의 일반의약품 복용 비율이 분업 전 44.5%에서 분업 후 52%로 급증했다. 현재도 당시 상황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반의약품 활성화 움직임은 약계 내에서 더욱더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얼마전 서울시약사회가 안약·연고제 등을 약국에서 직접 구입하자는 대국민 캠페인을 벌인 것은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지난 2월 문을 연 '홈케어센터'는 아예 '셀프 메이케이션'을 표방하며 국민들에게 "병원에 갈 필요 없어요"라고 설득한다. 이 센터는 모든 일반의약품에 대한 정보, 즉 효능·효과·복용방법 등을 알려주고 환자들을 병원이 아닌 약국으로 발길을 돌리게 유도한다.

심지어 병원에서 받아온 처방전 내용을 입력하면, 그 처방의 내용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를 '사전검열'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검열받은 처방전은 센터에 등록된 회원약국으로 자동전송된다. 바야흐로 약사가 병의원 대신 일반약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의사의 처방전을 감시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만연한 불법행위

올 1월 전문의약품을 의사의 처방없이 조제·판매한 약사가 검찰에 고발된 사건이 발생했다. 무려 600여명의 환자에게 스테로이드 호르몬제를 불법조제·판매한 혐의다. 약사회 등 약계는 극히 이례적인 사건을 일반화 하지 말라고 강변했으나, 의약분업 이후 일선 약국의 이같은 불법행위는 이미 '알려진 비밀'이 된지 오래다.

지난 2002년 5월 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가 서울시내 소재 약국 1,800여곳에 대한 조사결과, 불법판매·조제를 한 약국이 20~30%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해 하반기에 실시한 조사에서도 약사들의 평균 조제건수 5건 중 1건이 불법진료조제(임의조제)이거나, 약 바꿔치기조제(불법대체조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 중 89%가 약사의 불법 임의조제를 경험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충격적인 연구결과(2003년 12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약사들의 불법행위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2002년도 대비 2003년도의 약국 불법조제 건수가 무려 3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의약분업 이후 약사 불법행위는 해가 갈수록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약사의 불법행위는 이제 신문 사회면의 단골기사가 돼버렸다. ▲분업 예외지역내 약국 불법행위 17곳 무더기 적발 (2002년 7월 경기·인천) ▲전문의약품 불법 유통 약국 적발(2002년 9월 대구) ▲경기도내 약국 17곳 불법행위 적발 (2002년 11월)▲처방전없이 향정신성의약품 판매한 약사 덜미(2004년 4월 서울)▲가짜 비아그라 처방전 없이 불법판매 약사 일당 적발(2004년 5월 서울) 등 굵직한 것만 꼽아도 손가락이 모자를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사들의 뜻대로 일반의약품이 활성화 되고, 불법 진료·조제 행위의 이론과 실기를 제공할 약대 6년제가 시행되면, 과연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격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는 것이 의료계의 판단이다.

교육·보험재정 증가 국민부담 전가

개국약국과 달리 약사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병원에서 필요한 임상약사는 전체 면허약사의 2.8%에 불과한 실정이다. 전문적인 임상약사의 양성은 현행 제도아래서 졸업 후 연수교육과 대학원 계속교육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극히 일부에 불과한 임상약사의 양성을 위해 약학교육제도를 6년제로 연장하는 것은 교육비의 낭비인 동시에 고등교육 인력의 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약학대학협의회가 마련한 약대 6년제 교육과목을 살펴보면 일부 한의학 관련 교과목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임상약학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임상약학의 강화는 의사의 전문적인 영역이자 의료행위의 일부인 약물요법을 약사가 의사의 지도·감독을 받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학제 연장에 따른 사교육비 및 공교육비의 증가, 전문성에 입각한 보험재정의 추가지출 문제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약대 6년제는 의사의 전문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교육재정과 보험재정을 증가시켜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부담을 안져준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해결방안은 없나?

의료계가 약대 6년제를 반대하고 나선 배경에는 '약사의 의료인화'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약사의 직능과 의사의 직능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작업부터 선행해야 한다. 조제위임제도를 강제 시행한지 4년이 지났건만 약사의 불법적인 임의조제·대체조제 행위는 물론 약사의 직능을 망각한 무면허 의료행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법 의료와 임의조제행위가 약사에 의해 자행되고 있고, 정부 당국도 단속인력의 부족과 행정력의 부재로 묵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조제위임제도 시행 이전 상황과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으로 무겁게 다스렸어야 할 약사들의 불법적인 임의조제와 진료행위가 약사법에 의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의사들은 불신과 분노에 빠져 있다. 정부당국은 "의사들만 분업하냐"는 뿌리깊은 의사들의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약사회와 한의사협회의 밀실 협상을 통해 도출한 약대 6년제는 의료 공급자의 주축인 의사협회가 배재됐을 뿐 만 아니라 국민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약대 6년제 시행을 논하기에 앞서 여론의 수렴과 관련 단체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공청회를 여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약대 6년제를 둘러싼 의혹과 불신을 무시한 채 강행한다면 제2의 의약분쟁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책결정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공동취재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