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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쟁점 요양급여비용

사건과 쟁점 요양급여비용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4.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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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정부는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을 강행했다. 약물오남용을 막고 건강보험재정을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이 의약분업의 원래 목표였다. 그러나, 의약분업 실시 8개월 만인 2001년 5월 중순경 보건복지부는 처음으로 건강보험재정실태를 공개하였는데 그 내용은 당초의 예상을 뒤엎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당시 보험료 체계를 유지하고 국고지원을 받지 아니하면 건강보험재정은 조만간 파산할 수도 있으며, 2001년에만 약 4조원 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바로 건강보험 재정안정에 관한 종합 대책을 급히 만들어 냈는데, 그 주된 방안은 의료수가 인하를 통한 건강보험지출 억제책이었다. 즉, 정부는 의약분업 실시 과정에서 과도하게 진료비가 인상됨으로써 건강보험재정 위기가 초래됐다고 판단하고, 1)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 2) 차등수가제 도입 3) 주사제 처방료와 조제료 삭제 4) 야간가산율 적용 시간대 조정 등을 통하여 진료비를 인하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결국 진찰료 산정 등에 관한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실시할 경우, 대한의사협회 추산 1조 500억원 이상의 의료계 수입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건강보험재정의 파탄 원인이 의약분업을 경솔하게 강행한 정부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오히려 의약분업을 반대하였던 의료계에 떠넘기고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01년 6월 11일 위와 같은 안건을 내용으로 한 '건강보험요양급여행위및그상대가치점수 개정안'을 마련, 같은 달 27일 보건복지부 고시 제2001-32호(소위 6·27 고시)를 발령하고 7월 1일부터 바로 시행했다.

이에 대해서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국 400여명의 의사들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위 고시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요양급여비용 계약 내용 중에는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가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계약기간 도중에 요양급여행위와 그 상대가치점수를 임의로 변경 또는 조정하는 것은,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한 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 제1항에 위반된다는 것이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원고들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위 행정소송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원고의 청구가 기각됐고, 대법원에 상고하여 현재 심리가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1) 요양급여비용 계약의 내용은 무엇인지 2) 요양급여비용 계약기간 내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일방적으로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를 변경할 수 있는지 3) 변경하는 경우에 그 한계는 없는지(즉, 어떠한 내용이든 모두 변경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위 쟁점 사항에 관하여 1심과 2심 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 관련 법령 규정에 대한 해석을 통해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즉, 1) 요양급여비용 계약의 내용은 요양급여행위별 상대가치점수에 대한 '점수당 단가'를 의미하고 있음이 법문상 명백하다. 2) 요양급여행위나 그 상대가치점수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정하여 고시하는 것일 뿐이고, 위 계약의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3) 특히,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미 고시된 상대가치점수라고 하더라도 그 필요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거쳐 개정할 수 있다. 4) 따라서 보건복지부 장관은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를 계약기간에 관계없이 변경하거나 조정하여 고시할 수 있으므로, 진찰료와 처방료 등에 관한 산정기준을 개정한 이 사건 고시는 적법하다.

현재 상고심에서는 위 원심법원 판결의 정당성 여부에 관해서 치열한 법리 논쟁이 진행 중에 있다. 이하에서는 원고측이 주장하고 있는 핵심적인 사항에 관해서만 간단히 소개한다.

첫째,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요양급여비용(의료수가)은 1) 의료공급자와 연구기관이 연구한 상대가치점수를 보건복지부가 심의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시하면, 2) 이를 바탕으로 의약계를 대표하는 자와 공단 이사장이 그 점수당 단가에 관한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결정이 된다(즉, 요양급여비용 = 행위별 상대가치점수 x 점수당?단가). 즉, 점수당 단가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전제가 되는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가 결정돼야 한다. 따라서, 법령상으로는 점수당 단가만을 요양급여비용 계약의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 속에는 행위별 상대가치점수와 점수당 단가가 모두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둘째,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24조에 따르면, 동법 제42조 제1항에 의한 계약은 각 요양급여행위의 상대가치점수의 점수당 단가를 정하는 것으로 하고(제1항), 요양급여행위의 상대가치점수는 요양급여에 소요되는 자원의 양과 요양급여의 위험도 등을 고려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심의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고시하도록 하고 있다(제2항). 이 규정을 근거로, 원심법원은 '요양급여행위나 그 상대가치점수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정하여 고시하는 것일 뿐이고, 위 계약의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그런데, 원고들은 이 사건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어떠한 경우에도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를 일방적으로 고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고들이 주장하는 바는, 비록 보건복지부장관이 요양급여행위와 그 상대가치점수를 결정·고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국민건강보험법 제42조 제1항에서 정한 1년의 계약기간이다. 개인간에 체결하는 계약에 있어서도 일단 체결된 계약의 내용은, 중대한 사정변경이 있지 않는 한 당사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이를 변경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공단과 의료공급자간에 체결되는 요양급여비용에 관한 계약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위 계약은 공법상의 계약으로서 그 구속력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의 전제가 되는 요양급여행위와 그 상대가치점수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계약기간 중에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계약제를 도입한 국민건강보험법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고시에서 변경된 내용들은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진찰료와 처방료, 조제료 산정에 관한 일반적인 기준에 관한 것이다. 위 고시로 인하여 진찰료 및 조제료 산정 등에 관하여 근본적이고 중대한 변화가 초래됐다. 그 얘기는 바로 2001년도 요양급여비용에 관한 계약의 내용(또는 그 전제)에 중대한 변경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점수당 단가에 관한 계약을 새로이 체결하는 것이 계약제의 취지에 부합한다. 새로이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의료공급자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의료계는 위 고시의 시행을 적극 반대했다. 물론, 새로운 계약은 체결되지도 않았다.

셋째, 관련 법령에는 이미 정해진 상대가치점수라고 할 지라도 나중에 계약 당사자의 신청 또는 보건복지부장관 직권에 의해서 조정, 변경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6·27 고시는 계약당사자의 신청이나 동의에 따라 개정된 것이 아니다. 한편, 직권조정을 하고자 할 경우에는 '행위에 포함된 업무량 또는 자원의 양이나 가격 등이 현저히 변화되어 그 행위의 상대가치점수를 조정할 필요'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의 경우에는 직권 조정을 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2001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당시와 이 사건 고시의 개정 당시를 비교해 보았을 때, 진찰이나 처방행위 등에 포함된 업무량이나 자원의 양, 가격 등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보건복지부장관이 이 사건 고시를 개정하게 된 계기는 국민건강보험 재정적자 해소이다. 그런데, 그 사유는 직권 조정의 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한다. 건강보험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서 의료수가를 꼭 낮추어야 한다면, 그 다음 해인 2002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체결 과정에서 조정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 이전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요양급여비용(의료수가)을 일방적으로 고시함으로써 의료계의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2000년 7월부터 시행된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의료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협상에 의해서 요양급여비용을 결정함으로써 의료기관의 수용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계약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계약제가 실시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계약 당사자간의 합의에 따라 계약이 성사된 적은 한번도 없고, 모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의결됨으로써 계약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그런데다 위 6·27 고시와 같이 1년 동안의 요양급여비용이 결정되고 난 이후에 중간에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됐다는 이유만으로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 중의 중요한 내용을 보건복지부장관이 일방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고 한다면, 사실상 계약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요양급여비용 계약기간의 의미와 계약기간 내에 보건복지부장관이 변경할 수 있는 요양급여행위 및 그 상대가치점수의 한계에 관하여 대법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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