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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공부 못해서 '낙수과' 왔나요?"

"선생님은 공부 못해서 '낙수과' 왔나요?"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3.10.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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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데 없어 떨어진 '낙수' 취급? 필수의료 의사들의 '낙루(落淚)'
인재 유치는커녕 있는 사명감도 꺾여…'낙수의료' 되면 환자 안전은? 

ⓒ의협신문
[사진=rawpixel] ⓒ의협신문

선생님,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의대 다닐 때 얼마나 공부를 못하셨으면 여기 지방에서 저희 아버지 생명을 살리고 계신 건가요? 지금 새벽 2시인데 이 시간까지 일하시고도 월급은 제일 적게 받고 힘드시겠어요…참, 아버지 잘못되시면 17억 주세요.

한국 의료의 가까운 미래라며 의료계 유명 M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현재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은 스스로를 '낙수의'·'낙수과'·'낙수의료'라며 자조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개선보다도 의대 정원 확대의 낙수효과로 필수의료를 메꾸겠다는 정부 의지에 사명감과 자부심이 모두 꺾였다는 성토가 잇따른다.

'하이 리스크-로우 리턴'인 걸 알면서도 사명감으로 일해온 필수의료를, 성적이 안 되거나 능력이 부족한 탓에 미용 등 인기과에 가지 못하는 '떨거지'·'낙수'들이 가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

동 커뮤니티에서 로컬 '낙수과(바이탈)'에서 일한다는 A봉직의는 "환자에게서 '학교 다닐 때 얼마나 공부를 못했길래 여기서(지방에서) 일하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그 때는 그냥 일부 진상 환자라고 생각했는데, 낙수효과로 필수의료를 충당하겠다는 발표로 정부가 '낙수의료'를 공식화했다"고 토로했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명맥이 끊긴 필수의료과에 일한다는 B교수는 "수술하는 게 너무도 재밌는 마음 반,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 반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 과 교수들 대부분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철저히 짓밟혔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정부는 1000명 정도 의사를 더 뽑아놓으면 대부분 '피안성' 미용으로 빠지고, 여기저기 치인 잉여 인원이 기피과라도 하려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의학 중에서도 가장 존중돼야 할 필수의료를 어떻게 이렇게 취급하느냐"고 호소했다.

양성관 의정부 백병원 가정의학과장은 19일 SNS에서 "비록 돈은 적게 벌고 힘들게 일하더라도, '바이탈 의사'라는 말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사람을 살린다는 사명감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사용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생명을 살리는 바이탈 의사가 국가 정책으로 인해 '떨거지'를 뜻하는 '낙수 의사'가 됐다. 자부심을 뺏고, 능력 부족으로 미용을 못 해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모멸감을 주며, 필수의료 의사 가슴에 커다란 말뚝을 박았다"고 개탄했다.

환자들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C의사는 "뛰어난 학생과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로 오게 할 고민을 해야지, 최고의 인재들이 맡아도 부족한 필수의료를 '밀려난 낙수'로 충당하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수술 등에서 의료사고가 더 늘어나고 환자 안전이 크게 위협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초 의사들은 낙수 효과의 효용 자체에도 깊은 의문을 표했다.

의료계 유명 D커뮤니티에서는 "워라밸을 중시하고, 청년 백수가 최고치에 달해도 3D나 중소기업에 갈 바에 편의점 알바를 택하는 젊은층의 성향이 당연히 전공의 지원에도 반영된다. 애초에 전공의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되는 것보다 일반의를 선호하는 젊은 의사가 늘고 있는데 무슨 수로 낙수 효과를 기대하느냐"는 의견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 외에도 "진로를 고민하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인데, 그만둬야겠단 결심이 섰다", "내 자식이라도 낙수과 절대 안 보낸다", "전체 대학 입학 정원을 늘린다고 철학과에 가는 학생이 늘겠느냐", "낙수과 전문의인데 지금이라도 미용 배우러 가야 할까", "미용계는 낙수 보드(전문의)보다 GP(일반의)를 더 쳐준다" 등의 의견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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