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5-23 06:00 (목)
존엄한 죽음 원하는 국민 욕구 어떻게 풀어야?

존엄한 죽음 원하는 국민 욕구 어떻게 풀어야?

  •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10.22 11:02
  • 댓글 5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5년…아직도 미흡
존엄한 죽음 원하는 국민 욕구 충족 부합해야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의협신문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의협신문

최근 한 언론사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1%가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한다. 이런 여론조사에 편승해 '의사조력존엄사'라는 안락사 찬성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고, 입법에 대한 설문조사에 답한 100명의 국회의원중 87명이 찬성한다고 밝혔다. 

1999년 보라매병원 사건, 2009년 김할머니 사건 등을 거치면서,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면 진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연명의료와 관련된 갈등이 많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부터 시행되어 5년이 지났지만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줄이고 존엄한 죽음을 맞고 싶은 국민의 바람에는 매우 미흡하다.

최근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관심을 끄는 것도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불만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의 문제점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안락사법을 제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시행 중인 연명의료결정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1. 연명의료결정법의 대상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2022년 한해에 사망한 국민 37만 2800명 중 의료기관에서 임종한 비율은 74.8%이며, 이중 만성질환으로 의료기관에서 임종한 환자는 20여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22년에 실제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이행서가 작성된 환자는 6만 3921명으로 법 적용이 고려될 수 있는 대상 환자 중 약 25∼30%만 법 절차를 따르고 있다. 

진료 현장의 의사들이 법 적용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연명의료결정이 이루어지는 다른 나라의 입법과 달리, 우리나라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만 연명의료결정법의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활용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만 연명의료결정과 이행이 이뤄질 수 있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의 전산 확인도 가능하다. 문제는 요양병원의 윤리위원회 설치 비율은 8.8%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윤리위원회가 없는 요양병원 등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들은 연명의료결정을 할 수 없다. 매년 약 10만명 이상의 노인이 이런 소규모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사망하고 있다. 2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서 등록해 두었지만,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 입원한 상태에서는 그 서류가 활용될 수 없다.
 
3.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가 부족하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로 한 말기 환자에게는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제공될 수 있음을 연명의료결정법에는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호스피스 돌봄에 대해 건강 보험급여가 가능한 질환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 호흡부전, 만성간경화 뿐이다. 또, 인프라의 부족으로, 건강 보험 급여 대상 질환자 중에서도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을 수 있다. 

만성질환으로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약 20여만명의 환자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필요한 환자 중 대략 10%만 혜택을 받고 있다. 가정에서 사망하는 환자까지 고려하면 임종 과정에서 호스피스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는 훨씬 많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임종 과정에서 강도 높은 간병을 지원한다. 이외에도 간병이 필요한 만성질환자들이 많지만, 이런 간병을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위의 세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현재의 연명의료결정법은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에서 사망하고, 호스피스도 이용할 수 있는 말기 암 환자중심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많은 환자가 뇌졸중, 중증 치매 등의 만성질환으로 오랜 기간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 투병하다 사망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뇌졸중, 중증 치매 등의 환자들은 오랜 기간 투병하다가 식물상태를 거쳐 임종하는데,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은 지속적 식물상태의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결정은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들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음에도 오랜 기간 연명의료를 받으면서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지속적 식물상태에서도 연명의료 결정이 가능하다. 아시아 국가 중 대만은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2000년부터 실시해오던 법에 추가해, 2019년부터 '病人自主權利法'을 시행 중이다. 대만이 별도의 입법을 한 목적은 연명의료 결정의 적용 대상을 비가역적인 혼수상태, 식물상태, 중증 치매, 질병 및 통증이 견딜 수 없는 상태 등으로 확장하기 위함이다

선진국의 연명 의료결정 제도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시작해서, 사회적 논의를 넓혀 지속적 식물상태까지 가능하게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법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안락사를 법제화하겠다고 움직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려움에 부닥친 환자가 스스로 자살을 하게 유도하는 안락사법 제정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도록 연명의료결정법을 개선하는 것이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