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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수가 통제와 환자의 선택권

의료수가 통제와 환자의 선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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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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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이하 ‘의료비’·의료 이용 ‘자유’...대형병원 ‘쏠림’·전달체계 ‘붕괴’
지방의료기관·개인 의원 ‘공백’ 사건·사고 ‘원인’...의료시스템 지속 불가능
건보체계 지속하려면...퇴원 거부 시 건강보험 급여 불인정, 비용 개인 부담
공공의료·공공의대 ‘하드웨어’ 확충 아닌 환자 권리·의무 ‘소프트웨어’ 개선해야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의협신문
허대석 서울대 명예교수ⓒ의협신문

정부가 세금이나 국민건강보험에서 의료비용을 지급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것과 동시에 수요자인 환자의 선택권도 함께 제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환자는 저수가의 혜택은 누리지만, 의료기관 이용에 대한 통제는 거의 받지 않는다. 이런 권리와 의무의 불균형이 의료서비스 이용자 측면에서는 편리하지만, 여러 가지 의료 분쟁을 야기하고, 장기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 잔의 커피에 필요한 재료와 이윤 등을 표준화하여 일정 가격 범위에서만 유통할 수 있게 정부가 통제하면서, 어디에서 커피를 마실 것인지에 관한 선택권은 제한하지 않았을 때 어떤 상황이 생길지는 쉽게 상상을 할 수 있다. 같은 가격이라면, 지방자치단체 주민센터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보다, 좋은 경관이 있고 실내장식이 멋진 개인 커피전문점이나, 특급호텔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게 될 것이다. 주민센터 카페는 손님이 없으니 직원을 줄이게 되고, 원두의 신선도가 떨어져 커피의 맛과 서비스가 낮아져 점점 낙후하게 될 것이다. 

특급호텔 좋은 자리를 어렵게 차지한 사람은 긴 시간을 머물면서 나갈 생각을 잘 하지 않아 대기자는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의 불만 또한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특급호텔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게 하겠다고 주민 수백 명 사는 시골에 특급호텔을 지으면 그게 제대로 운영이 되겠는가?

한국의 의료전달체계가 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중증 질환자는 본인 부담이 5%이고, 본인부담액 상환제와 같은 제도의 영향으로 실질적인 본인 부담은 의료기관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다. 같은 비용으로 규모가 크고 시설이 좋은 수도권의 유명 대학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니, 지방의료기관이나 개인 의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도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이들 병원에 진료를 보려면 장시간 대기가 필요하고, 한 번 입원한 환자는 퇴원하지 않으려 하니 중증 응급환자조차 바로 입원을 못 하는 일이 생긴다.

중증 환자 진료에는 여러 진료과의 전문의가 공조해야 하는 것을 아는 의사들은, 내원 환자 수도 적고 재정 여력도 없어 과목마다 전문의를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운 지방의료원에서 일하기를 꺼리기 마련이다. 입원실이 있어도 특정과의 전문의가 없는 것을 알고 환자들이 그 병원을 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지방의료원은 지자체의 세금 먹는 하마가 된다.

최근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를 비교해보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가 의료 수가를 통제하는 유럽 국가들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까? 

첫째는 선택권 제한이다. 영국 사우샘프턴(Southampton) 지역 중년 남성이 폐암으로 진단되어 수술받아야 할 경우, 그 지역 내 폐암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예약하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환자가 폐암 수술 분야에서 권위가 있는 런던(London) 대학병원 유명 교수에게 수술받기를 원하면 진료의뢰서는 작성해 주지만 의료보험 혜택은 받을 수 없다. 또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빨리 수술받고 싶으면 의료 수가 통제를 받지 않는 민간병원에서 전액 자비로 수술받아야 한다. 

둘째는 의료자원 이용에 대한 제한이다. 응급환자를 실은 119구급대가 여러 병원에 문의하였으나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들이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병원이 응급환자를 못 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빈 병상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당 입원 병상 수는 OECD 국가 평균의 3배 수준이고, 응급의료기관 및 중환자 병상도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전혀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평균 입원 일수는 OECD 국가 평균의 2배 이상이고, 미국이나 영국의 3배 수준이다. 

한국에 비해 인구당 병상 수가 적은 영국에서는 중증 응급환자를 항상 수용할 수 있게 병상의 10~15%를 비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의료진이 이미 입원 중인 환자들을 지속해서 재평가하여 중증도가 낮은 환자 순으로 거주지 지역병원으로 전원시킨다. 의사가 전원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대학병원에 계속 입원하기를 원하는 환자는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받지 못하며, 모든 비용은 개인 부담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수년이 걸리는 소송 외에는 사실상 퇴원을 거부하는 환자를 강제로 내보낼 방법이 없다.

의료제도가 시장 논리에 의해 운영되는 미국에서는 동일 수술일지라도 병원이나 의사에 따라 수가가 다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원하는 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가능하다.

민간보험 중심 의료체계를 보완하기 위한 오바마케어 조차도 환자 대부분은 의료기관이나 의사에 관한 선택권이 없고 보험회사가 배정한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감기와 같은 경증 질환일수록 고액의 의료비를 본인이 부담하게 하여 병원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은 의료의 보장성에 중점을 둔 제도를 운용하면서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다. 개인이 낸 의료보험료에 비례하여 선택권을 부여하는 미국은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보장성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완벽한 제도는 존재할 수 없지만, 의료 보장성과 의료서비스 선택권 제한의 적절한 균형은 필요하다. 그래야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지속할 수 있고, 지방의료기관과 개인 의원도 제대로 운영되어 의료공백 지역이 줄어들 수 있다. 

국가가 의료 수가는 원가 이하로 통제하고,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상태로 수십 년이 지나면서, 한국 의료전달체계의 불합리성으로 인한 사건 사고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어렵게 구축한 대한민국 건강보험체계를 지속 가능하게 바꾸는 해결책은 공공의료기관이나, 공공의대 신설과 같은 하드웨어의 확충이 아니다. 환자들의 권리와 의무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운영시스템의 소프트웨어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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