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5-28 06:00 (화)
좋은 통계로 보답하는 보건복지부

좋은 통계로 보답하는 보건복지부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9.07 17:32
  • 댓글 5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건복지부, 인위적인 자료·통계 수치
균형과 합리적인 국민 여론 형성 어려워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의협신문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의협신문

OECD에서 여러 국가의 의료체계 특징을 조사한 바 있다. 이 조사에는 "행위별 수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결과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중앙단위에서 구매자와 공급자가 협상하여 행위별 수가를 결정하는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우리나라 외에도 독일·영국·프랑스·호주가 이렇게 수가를 결정하는 나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이렇게 '수가협상하여 결정'하는 국가로 분류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물론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소위 유형별 수가계약이라는 것이 규정돼 있다. 그러나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보건복지부장관이 강제로 수가를 정한다. 이런 강제조치가 전제돼 있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협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계약'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FTA 협정은 일종의 국가 간 계약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강하게 우리나라를 압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그것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으며 이모저모를 따져 보고 거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도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미국이 우리나라에 대해 강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국제법적 권한이 있고 우리나라는 그걸 거부할 수 없다면 매우 불합리한 FTA가 체결될 것이다. 이런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협상'이라고 할 수도 없고 '계약'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물론, 국가 간 FTA와 특정 국가의료보장제도 운영은 다른 측면이 있다. 따라서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때 대안을 마련해 놓은 국가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런 국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의사를 강제로 동원하기 때문이다. 

영국·독일·프랑스에서 의사는 원하면 민간 부문(private sector)에서 독립적으로 민간 환자(private patient)를 진료할 수 있다. 이는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실질적인 협상과 계약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이들 국가는 의사가 국가의료보장제도에 참여하면 연금도 지원한다. 

영국은 의사가 NHS에 참여하면 연금을 지원한다. 프랑스 역시 의사가 국가의료보장제도에 참여하면 연금을 지원한다. 이런 의사는 정부가 정한 기준대로 수가를 받아야 한다. 반면 국가의료보장제도에 참여하지 않는 의사에게는 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의사는 자유롭게 수가를 정할 수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프랑스 일반의의 6%, 전문의의 48%는 연금 대신 자유롭게 수가를 결정하며 진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 국가와 달리 의과대학 교육비를 정부가 책임지는 나라가 아니다. 의원이나 병원을 만들 때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는 나라도 아니다. 부모님이 뼈빠지게 돈 벌어서 혹은 본인이 힘겹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의과대학을 다니고 은행 빚을 얻어 의료기관을 세운다. 그런데 국가가 강제로 의료행위의 수가를 결정한다. 

결국 우리나라를 '중앙단위에서 구매자와 공급자가 협상하여 행위별 수가를 결정하는 국가'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협상도 아닌 것을 협상해 계약한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그런데 거짓말이 OECD 자료에 담긴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보건복지부가 OECD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7월 보건복지부는 OECD 보건통계를 요약한 보도자료를 냈다. 기대수명, 회피가능사망률, 자살사망률, 영아사망률, 흡연률, 주류 소비량, 비만인구비율까지 한국 옆에 일본의 통계를 보여줬다. 그러다가 임상의사수 통계가 나오니까 갑자기 일본을 빼고 호주를 옆에 넣었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우리나라 2.6명, 일본 2.6명으로 같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해야 하니 일본 통계를 슬쩍 감춰 버린 것이다. 이래도 되나 싶다. 

보건복지부는 종종 국가 간 보건의료 통계를 비교해 발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진료 수가가 말이 안 될 정도로 낮다는 통계는 찾지도 않고 알리지도 않는다. 의료남용을 의사들 탓이라고 비난하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환자 대기 시간 문제가 없다는 통계는 찾지도 않고 알리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의료사고 때문에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자료는 찾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의사들이 소멸하는 게 큰 문제라는 인식이 있는지 의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혹은 국민의 입맛에 맞는 자료와 통계만 만든다. 그것을 잘 만드는 연구자에게 용역을 준다. 여기서 일종의 퍼블리케이션 바이어스(출판 편향)가 초래된다. 이렇게 국민의 눈이 가려지는 데 균형 있는 여론, 합리적 여론이 형성될 리가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통계청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좋은 통계를 만들어 보답하겠다"고 했다. 사실 보건복지부는 늘 좋은 통계로 보답해 왔다. 그래서 의료는 왜곡된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