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9 14:31 (금)
대법원과 통계적 근거

대법원과 통계적 근거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2.08 06:00
  • 댓글 5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등한 조건이 아닌 상황에서 나오는 통계치로
두 집단 비교·결론 도출 "완전히 잘못된 것"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2022년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인 피고인이 2년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오진한 사건에서 무죄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한의사가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기존의 판단기준을 폐기하고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판단기준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법원은 여러 가지 기기묘묘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의사도 오진을 할 수 있는데 유독 한의사에 대해서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만한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의사의 경우에만 일률적으로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해석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통계적 근거'라는 단어를 이런 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충격적이면서도 참담하다. 대법원은 통계란 것이 무엇인지, 통계를 어느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2020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20만 9664건이다. 이 중 면허가 있는 사람이 야기한 교통사고는 20만 4357건이고 무면허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5307건이다.

운전면허에는 제1종과 제2종이 있으며 16세 이상이면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2020년 16세 이상 인구는 약 4504만 5600명인데 이 중 면허를 가진 사람은 3319만 565명, 면허가 없는 사람은 약 1185만 5035명이다. 

계산해 보면 유면허자는 1만명당 62건의 교통사고를 야기하고 무면허자는 1만명당 4건의 교통사고를 야기한다.

이런 통계치를 가지고 무면허자가 훨씬 안전하게 운전을 한다고 주장한다면 혹은 유독 무면허자에 대해서만 운전을 부정적으로 볼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제정신일 수 없다. 무면허자는 일반적으로 운전을 하지 않는다. 당연히 인구대비 교통사고 유발률이 높을 수 없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나라에서 간호사가 초음파를 시행하면 얼마나 오진을 하는지에 대한 통계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초음파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사도 오진을 할 수 있는데 유독 간호사에 대해서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만한 유의미한 통계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합당한 논거일 수 없다. 한의사의 초음파 시행과 관련된 오진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사용되지 않은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약이 기존의 약에 비해 부정적으로 볼 만한 유의미한 통계치가 없다면서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제정신일 수 없다.

현대 의학이 이런 식으로 두 가지 의료기술이나 약을 평가하고 그 사용을 정당화했다면 수많은 환자를 죽였을 것이다. 의사가 이런 식의 주장을 했다면 아마 다른 의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얼굴을 들고 살지 못했을 것이다. 

통계를 갖고 두 집단을 비교할 때는 동등한 조건이 보장돼야 한다. 동등한 조건이 아닌 상황에서 나오는 통계치를 가지고 두 집단을 비교하면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바로 이런 식의 논증을 하며 판결을 정당화한 것이다. 통계적 무지에서 나온 근거를 들이대면서 "통계적 근거" 운운하는 대법관을 보는 것은 참으로 괴롭다. 나의 괴로움을 떠나 우리나라의 비극이다. 

■ 칼럼이나 기고 내용은 <의협신문>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