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약 두번씩 하던 강의를 마쳤다. 교수로서 마지막 강의다.
전공의들은 저마다 그려온 '미인도'를 소개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늘 그렇듯이 강의가 끝나기 전에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새로 '수석전공의'가 된 3년차가 "슬픕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교수님이 곧 정년퇴임하시면 더 이상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없게 되어 그렇습니다."
전혀 생각 않고 있다가 그런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먹먹해져서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의국을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입술갈림코변형(Cleft lip nose deformity) 환자를 수술하게 됐다.
꽤 오랜만에 카스트로베조 캘리퍼(Castroviejo caliper)를 사용해 입술과 코 사이의 거리를 재고 그 차이에 따라 도안해 양쪽 '큐피드 활의 꼭지점'의 높이를 같도록 수술했다.
나사를 돌려서 모으면 거리가 짧아지고 벌리면 거리가 멀어지며 0㎜에서 25㎜까지 잴 수 있다. 스페인태생의 의사가 고안해 그의 이름을 붙인 이 계측기는 일종의 컴파스이다.
이 계측기를 사용해 수술을 하다가 문득 영국 성공회의 사제이며 시인이었던 존 던(1572-1631)의 시가 생각났다.
제목은 '고별사, 슬픔을 금하며(A valediction: forbidding mourning)'.
그는 이별을 컴파스(Stiff twin compasses)의 두 다리에 비교했다.
"우리 두 영혼은 하나여서 나는 가야 하지만, 단절이 아니라 공기처럼 얇게 쳐진 금박처럼 확장될 뿐이오. 곧은 컴퍼스의 다리가 둘인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둘이오; 그대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여서 중심에 있지만, 다른 다리가 멀리 돌 때엔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그 다리가 집에 돌아오면 다시 곧게 선다오."
검은 옷을 입은 복사들을 거느리고 엄숙히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처럼, 수술복을 입고 제자들을 데리고 마취된 환자들에게 수술을 집도하던 나도 머지않아 수술실을 떠난다.
수술을 무사히 끝낸 후, 나는 제자들에게 나사를 돌려 계측기의 다리를 벌렸다가 다시 나사를 돌려 계측기의 다리를 모으는 것을 보여주며, 이 시의 내용을 인용했다.
시처럼 우리가 헤어지고 또 내가 직장을 옮기더라도 같이 진행하던 연구는 마무리 지어주겠으며, 우리는 언제라도 학회에서 만날 수 있다고.
이별을 '슬프다'고 표현했던 수석전공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앞으로도 논문이나 글을 쓰시면 계속 카톡으로 보내주실 거지요?"
"물론이지요."
나는 확신에 찬 대답을 남기고 수술실을 걸어 나왔다. 만해의 시가 귀에 들렸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