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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고 테너 파바로티를 그리며

금세기 최고 테너 파바로티를 그리며

  • 박성태 의협 고문(헌정회 원로위원·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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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의협 고문(헌정회 원로위원·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

1977년 11월 29일 처음 한국을 방문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당시 한국성악회 공보이사를 맡은 박성태 고문이 파바로티를 영전했다. 11월 30일 조선호텔에서 만난 파바로티와 박성태 고문. 파바로티가 박성태 고문의 독창회 공연 팸플릿을 살펴보고 있다. ⓒ의협신문
1977년 11월 29일 처음 한국을 방문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당시 한국성악회 공보이사를 맡은 박성태 고문이 파바로티를 영접했다. 11월 30일 조선호텔에서 만난 파바로티와 박성태 고문. 파바로티가 박성태 고문의 독창회 공연 팸플릿을 살펴보고 있다. ⓒ의협신문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여 더 없이 폭넓은 사랑을 받은 금빛 찬란한 광채를 지닌 미성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1935-2007).
그는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음의 발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필자에게 파바로티와의 만남은 가장 잊지 못할 경이적인 사건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파바로티는 1977년 11월 29일 MBC 초청으로 처음 내한 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성악회 공보이사를 맡은 필자는 음악평론가인 유한철 KOC 위원과 김포공항 영접에 동행했다. 유한철 위원은 추운 날씨 때문에 털모자에다 목도리를 감은 거구의 파바로티에게 "의사 테너로 여러번 독창회를 열었다"라고 필자를 소개했다. 밝은 미소와 함께 휘둥그레한 눈으로 반갑게 악수를 청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길로 조선호텔에 여장을 푼 파바로티는 그날 저녁 7시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열리는 독창회에 앞서 리허설을 했다. 리허설에서 부른 글루크(Gluck)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전율을 느낄 만큼 아름답고 슬픈 느낌이 들었다. 

첫 내한 공연 직후 필자는 악귀를 쫓고 행운을 약속한다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을 새긴 목각 인형을 선물했다. 한국의 얼이 담긴 목각 인형을 받아들고 소년처럼 매만지며 기뻐하던 무구(無垢)한 모습은 지금도 영영 잊을 수 없다.

파바로티는 한국을 떠나면서 필자에게 우정을 담은 엽서를 보냈다. 언제부터인가 필자는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이 추억의 엽서를 읽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1977년 12월 1일 파바로티는 내한 공연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면서 박성태 고문에게 감사와 우정의 인사를 담은 엽서를 보냈다. ⓒ의협신문
1977년 12월 1일 파바로티는 내한 공연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면서 박성태 고문에게 감사와 우정의 인사를 담은 엽서를 보냈다. ⓒ의협신문

또 하나 잊지 못 할 일은 이대 독창회 당시 필자가 미리 청한 앙코르곡(푸치니의 '라토스카' 중 아리아 '오묘한 조화')을 맨 먼저 불러 준 것이다.

그는 1977년 첫 내한 공연 이후 1993년과 2000년 두 차례 독창회를, 2001년에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스리 테너 콘서트'를 열었다.

꼭 낀 까만 연미복 정장에다 더부룩한 구레나루에 항공모함 같은 거구를 이끌고 무대에 올라 하얀 손수건을 왼손에 든 채 노래하는 위대한 테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얀 손수건은 감정과 발성에 필요한 호흡의 깊이를 조절하기 위해 미리 자기최면을 걸기 위한 매너로 선택했다고 한다. 

파바로티의 기벽(奇癖) 중 하나는 공연에 앞서 구부러진 못을 찾아내 호주머니에 넣는 일인데 행운을 붙들기 위한 믿음 때문이다. 오래전 파바로티가 탄 비행기가 밀라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두 동강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파바로티는 자신과 승객들이 무사했던 것은 구부러진 못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떤 이들은 파바로티가 세계 최고의 테너가 된 것은 1935년 같은 해에 같은 고향(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난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Mirella Freni)와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헤라 여신 못지않은 신비로운 젖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파바로티는 1947년 모데나 출신의 당대 가장 유명한 테너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 1890-1957)와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경애하는 테너 질리를 만난 12살 소년 파바로티는 용기를 내어 "선생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성악 공부를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질리는 "바로 5분 전까지야! 이 친구야"라고 격려했다. 아무리 출중한 음악가라도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질리의 대답은 어린 파바로티에게 평생의 좌우명으로 남았다.

파바로티는 마리오란자의 영화에 감흥을 받아 높은음을 따라 부르는 평범한 소년기를 보냈으며, 음악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열정을 알아본 스승 아리고 폴라와 에토레 캄포갈리아니를 만나면서 희망을 싹을 키울 수 있게 됐다. 

1961년 이탈리아의 레조 에밀리아에서 열린 '아킬레 페리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한 것으로 계기로 오페라 '라보엠' 무대에 올라 본격적인 파바로티 시대를 예고했다. 1965년 '라스카라좌', 1968년 '메트로폴리탄'을 통해 한 테너의 꽃으로 불리는 최고의 음역 '하이 C'를 9번이나 구사했다. 맑고 확 트인 탄력성 있는 음을 마음대로 내는 소리의 마술사로 자리매김했다.

파바로티는 20세기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조차 누리지 못한 전대미문의 열광적인 환호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음악 후반기에 메트로폴리탄 30주년 기념 공연, 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와 함께한 '스리 테너 콘서트' 등 자선음악회를 열어 환자와 난민의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관중은 산소와 같다"라는 멋진 말을 남긴 그는 2007년 9월 6일 영영 우리 곁을 떠났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들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거장이여 영원히 잠드소서!(Addio, Maestro!).

박성태 의협 고문(헌정회 원로위원·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
박성태 의협 고문(헌정회 원로위원·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

■ 박성태 의협 고문(12대 국회의원)은 1964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69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 새서울외과를 개원했다. 1981년 대통령 주치의를 거쳐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민정당·전국구)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헌정회 이사·고문·<憲政>지 편집위원을 지냈다. 문화계에서는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 위원을 비롯해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음악계에서는 한국음악협회 명예이사장·한국성악회 고문·서울오페라단 고문 등을 맡았다.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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