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자의 아름다운 책
탈무드 책 속의 단어가 나를 읽는다.
푸른 숲속 키 큰 나무가 쓰러지는 것도 책의 책임은 아니다.
성인(聖人)들이 던지는 눈빛이 문장이 되는 것도 책의 이유는 아니다.
허공에 손을 넣어 꽃을 건져낸다고 해도 그것은 책의 일이 아니다.
말레이시아에는 터번을 쓴 문장이 일어나
단어들을 줄지어 데려간다.
숲속에서 물고리를 낚는 것도 날씨가 흐린 이유가 될 수 있다.
책 속의 단어가 나에 대해서 쓴다.
"바람이 불고 쓸쓸히 한 사내가 벤치에 홀로 앉아 있다."라고 벤치의 나무를 만지며 물고기 뼈를 상상한다.
선물 받은 탈무드 책의 맨 앞장에
"1983년 9월 30일, 결혼을 축하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탈무드는 오천 년 동안 언어들이 공들여 만든 거대한 나무였다.
귀이기도 하고 눈이기도 했다.
탈무드의 뼈를 만지며 유태인의 마음속으로 걸어가 본다.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긴 수염의 사내들만 모여 있었다.
나무가 나를 읽고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릇에 혀가 달려 있었고 사과를 먹고 있었다.
지혜(智慧)가 가득한 사과가 시(詩)를쓰고 있었다.
부산 김경수내과의원장/<현대시> 등단(1993)/시집 <하얀 욕망이 눈부시다> <다른 시각에서 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달리의 추억> <산 속 찻집 카페에 안개가 산다>/<시와사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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