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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차의료가 무너진다(상)-아랫돌빼어 윗돌괴기

[기획]1차의료가 무너진다(상)-아랫돌빼어 윗돌괴기

  • 김병덕기자 kduck@kma.org
  • 승인 2003.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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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5일 발표된 `OECD Health Data 2003'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0개 회원국 중 대부분 항목에서 취약한 보건의료 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총생산(GDP)가운데 의료비에 지출되는 총비용이 OECD 평균인 8.1%에 비해 5.9%(2000년 기준)로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공적 건강보험의 보험료율도 독일(14.4%), 프랑스(13.55%), 일본(8.85%)에 비해 최하위인 3.94%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OECD 국가 중 가장 적은 의료재정으로 국민의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의료공급자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틀어막거나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총의료비에서 약제비 비율(25.8%)이 OECD 2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는 상대적으로 의료공급자에 대한 의료재정이 빈약하게 지원되고 있으며, 의료기술에 대한 보상 수준이 그만큼 낮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OECD 최하위라는 빈약한 의료재정과 함께 세계 2위권(41.3%)의 본인부담률 문제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의료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결국 의료공급자에게 돌아가는 의료 기술료를 줄이거나 약제비를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려는 소액진료비 본인부담 강화와 중증질환의 본인부담금상한제 시행을 위한 재정조달 방법이 의료공급자 내부에서의 재정을 이동시키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기 등 가벼운 질환의 본인부담금을 늘려 여기에서 생기는 여유 돈으로 암등 중증질환의 보험급여비 가운데 일정액 이상을 지원하는 소액진료비 본인부담 강화를 통한 본인부담금상한제는 결국 아랫돌 뽑아 윗 돌 괴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소액진료비 본인부담이 강화될 경우 1차의료의 고유기능과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환자의 의료 접근성·지속성·책임성은 물론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 역할 분담 등이 그만큼 위축된다는 점이다. 지난 2000년 11월 의약분업평가단 조사에서 아파도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고 참는다는 환자의 비율이 10.1%였으나 2002년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는 41.6%로 집계됐다. 아파도 경제적인 이유로 참는다는 환자의 비율이 늘어나고, 1∼3차 의료기관간 의료전달체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1차의료의 문턱을 높이는 정책이 추진된다면 결론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액진료비 본인부담 강화, 심사 및 평가 강화 등 일련의 정부 정책은 1차의료의 자생력 마저 뿌리 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참여정부가 추진하려는 본인부담금상한제의 재정조달 방안은 감기와 물리치료 등 가벼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올려 의료이용을 억제하고, 심사기준을 강화해 의료행위를 제약함으로써 절약한 보험재정을 이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난 5월을 기준으로 극빈층(기초생활수급자)은 135만명이고,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102만원) 보다 20%를 더 버는 탓에 생계·주거·교육급여·의료보장 등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준극빈층(차상위계층)은 약 320만명(전체 인구의 약 7%)으로 집계된 바 있다.

참여정부의 동네의원 문턱 높이기 정책이 추진되면 가벼운 질환을 앓고 있는 준극빈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의료이용률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의료이용에서 소외된 환자들은 아파도 참거나 약국에서의 임의·불법조제나 유사의료·민간요법 등으로 분산될 것이 자명하다.

대한가정의학과개원의협의회(가개협)는 가벼운 감기로 오인될 수 있는 결핵 유병률이 OECD국가중 최상위권에 속하며, 고혈압 치료율과 관리율도 10∼35%에 불과한 상황에서 1차의료의 문턱을 높일 경우 의료이용률을 크게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개협은 1차의료 진료시의 본인부담금을 인상할 경우 질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 및 만성질환의 적절한 관리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국민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지난 7일 `포괄수가제의 전면시행과 경증질환에 대한 본인부담금 강화 관련 성명서'를 통해 “경증질환에 대한 본인부담금 인상정책은 1차 의료 활성화 및 2차, 3차 의료 연계강화를 통한 올바른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시 정부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자칫 의료의 문턱이 높아지고 중질환의 조기 발견을 가로막아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함과 동시에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인 1차 의료기관의 도산을 가속화시키고 의료비의 증가로 인한 보험재정의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철회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증질환에 대한 본인부담상한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보험에서 제외되는 재료비·선택진료비·식대·병실 차액료·고가장비 등 총진료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비급여항목은 환자가 전액을 부담해야 하므로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노동계와 언론계의 주장이다. 노동계는 2000년 7월 본인부담금이 월 100만원을 넘은 경우 초과금액의 50%를 보상했지만, 2002년 1월부터 월 120만원으로 상향 조정함으로써 의료보장의 범위를 축소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의 본인부담상한제는 한 낱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차상위계층은 중증질환에 대한 본인부담상한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비급여항목에 대한 부담능력이 없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설사 의료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가정 경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윤철수 의료개혁국민연대 대표는 “120만원 이상에서 200만원 이하(저소득자의 경우), 또는 300만원 이하(고소득자의 경우)를 본인부담으로 내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120만원을 초과하면 초과금액의 50%를 보상받던 혜택마저도 박탈당하게 됐다”며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내용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부담만을 늘릴 뿐, 보험 혜택이 이전보다 더 축소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윤 대표는 “복지부는 감기 등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고, 대신에 백혈병이나 만성신부전증, 암 등 희귀·난치성질환, 고액 질환자의 본인부담금을 경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 질환 전부에 대해 건강보험과 별도로 국고에서 본인부담금을 전액 지원하겠다면서 이미 예산을 확보한 상태다.

2003년도에는 2002년보다 무려 220억3,500만원이 증액된 864억7천여만원이 책정되어 있다”고 밝혔다.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지원하기 위한 국고예산을 이미 책정해 놓은 상태에서 같은 용도의 예산을 건강보험재정으로 확보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윤 대표는 주장했다.

이명진 의사(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는 본인부담금 인상 후 예상되는 의료형태의 변화와 관련,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진료횟수(초진횟수) 감소를 통한 의료이용의 감소, 초진횟수의 감소로 인한 내원일수의 감소, 재진권유 포기에 따른 내원일수 감소, 약제투여 강도의 증가에 따른 조제료 증가, 중증질환의 진단 기회가 줄어듦으로 인한 중증질환의 증가, 차상위저소득 계층의 의료접근성이 극도로 악화, 본인부담금이 부담이 되어 불법 임의조제 요구 가능성 증가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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