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영춘 선생을 기억하며…

다시 이영춘 선생을 기억하며…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8.10.1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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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함께 농촌과 함께 외길
쌍천 이영춘 박사의 삶 < 글을 마치며 >

씨그레이브 기념병원 낙성식에서 인사하는 쌍천 선생.ⓒ의협신문
씨그레이브 기념병원 낙성식에서 인사하는 쌍천 선생ⓒ의협신문

전라북도 군산에는 '이영춘 마을'이 있다. 서개정마을이 이름을 바꾸고 이영춘 선생을 추억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고즈넉히 이영춘 선생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옆에는 마을 헌장이 돌새김돼 있다. 

"이영춘 박사의 봉사와 희생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

한 사람의 삶이 가계를 넘어 한 사회로 향하고 온 나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이영춘 선생은 어떤 모습일까.

쌍천(雙泉) 이영춘(李永春·1903∼1980).

"민족의 영원한 발전은 건강한 농촌에 있다."

선생이 농촌을 위해 농민을 위해 평생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다짐이다.

선생의 삶은 그대로 사랑이다. 그 사랑은 일제강점기 참혹한 수탈로 피폐해지고 스러지는 국운에 마음 둘 곳 없던 이 땅의 농민들에게 한 줄기 빛으로 내려 앉았다.

누구도 곁을 돌아보지 않던 세상에서 선생의 눈길은 항상 긍휼한 마음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향했다. 자신을 앞세우지도 않고 스스로를 드러내지도 않았다. 

촉망받는 의학자로 안온하고 평탄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선생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때로는 금전이나 권력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 역시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쌍천(雙泉). 두 개의 샘이다. 선친의 태몽 속에 등장한 샘물이다. 

"밭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운데서 샘이 두 개나 터졌다. 샘에서는 맑은 샘물이 펑펑 솟아났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서 그 샘물을 마시고 있었다. 흰옷을 정갈하게 입은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그 샘물을 달게 마셨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선친에게 태몽이야기를 들은 선생은 자신의 호를 쌍천으로 삼았다. 건전한 정신과 튼튼한 육체의 마를 줄 모르는 샘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평생을 농민과 농촌과 함께 하는 삶을 이어간다.

서예에 몰두하는 쌍천 선생ⓒ의협신문
서예에 몰두하는 쌍천 선생ⓒ의협신문

쇠락한 나라와 피폐한 농촌 현실은 오히려 선생의 다짐을 굳게 했다. 

보통학교 훈도로서, 병리학에 매진한 의학자로서, 민초의 곁을 지킨 개원의사로서, 그리고 농촌 개혁과 농민 건강을 위해 일관한 삶에서 그의 중심은 항상 내가 아닌 남이었다.

동역자 없이 홀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선생은 언제나 주변의 마음을 얻었다. 외도를 허락치 않은 여일함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농장주도, 광복이후 혼란 상황에서 미국인 군정관도, 전란 속 폐허된 나라의 정부 관료까지 모두 선생의 뜻을 따르게 했다. 

선생이 손길은 닿은 곳은 역사의 시작이 됐다. 

농촌위생연구소·개정간호고등기술학교(군산간호대학 전신)·개정중앙병원·개정보건소·화호여자중학교·모세스영아원 등이 선생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농촌 보건위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개설한 학생·교사 교육프로그램과 국내 첫 양호실·양호교사 배치 등은 시대를 앞서간 탁견이었다. 

선생이 생전 머물던 자리는 지금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이영춘가옥'으로 보존되고 있다. 1920년대에 건축된 이 집은 한식·양식·일식의 건축양식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건물로 근대 새로운 주거문화가 들어오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곳에선 인술을 통한 사랑과 봉사로 세상을 변화시킨 선생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다.

선생은 이 땅의 주변인으로 소외된 채 희망을 찾을 수 없던 농민의 삶에, 농촌사회에 변화를 이끌어냈다. 선생은 무지로 비롯된 열악한 농촌위생을 개선하고 질병의 고통속에 머물던 농민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비추며 가난과 질곡의 구체제를 종식시킨 진정한 농촌혁명가다.

100여년전 이 땅을 살아간 한 의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오늘 다시 곰곰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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