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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아픔을 수용하는 삶

청진기 아픔을 수용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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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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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주 박사(세연가정의학과의원/아크로마인드연구소 원장·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

▲ 송 향 주 박사(세연가정의학과의원)

우리는 요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홉 가지의 기본 감정 중 부정적인 온갖 종류의 모든 감정을 경험하며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어떻게 수용하며 살아야 할지를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있다. 정서적 쓰나미가 지난 후의 아픔(pain)과 고통(suffering)이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아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이 자연적인 감정, 즉 스트레스 상황에서 유발되는 불안과 걱정은 때로는 우리의 능력을 향상시키거나 동기를 유발시켜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훌륭하게 적응할 수 있게 하고 삶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사람은 자연이 주는 감정, 즉 아픔에 자신이 만들어낸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더하여 왜곡된 감정의 크기로 변화시킨다. 결국 우리는 조그만 불안을 커다랗게 느끼거나 아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될 것 같아!"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으로 불안을 만들어내는데, 바로 이것이 고통(suffering)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때로는 우리의 삶을 보호하고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여 어느 정도는 주어진 상황을 신속하게 대처하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의식적이고 자동화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감정의 확대는 현실을 왜곡해서 판단하게 되므로 그 결과로 인한 정서적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라는 이치가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세상 진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걱정을 일으킨다. 따라서 아픔에 과장된 인지적 감정을 더하여 고통으로 확대재생산 하게 되면 일상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워지는데 요즈음의 우리가 바로 이 모습이다.

감정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아직 인간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감정이 행동에게 많은 영향은 주지만 전적으로 통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감정을 지배할 수는 없지만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슬픔과 분노를 가지고 있어도 손과 발은 우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에서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한 도구로 인간에게 주어진 감정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 것인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왜곡되고 과장된 감정인 고통을 의식적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의 삶과 함께 동행 하는 감정에 대하여 순기능을 살리고 역기능을 줄이는 묘수가 있는가? 그 해답은 감정의 수용에서 찾을 수 있다.

수용이란 적극적으로 개인적 경험, 즉 감정을 포함한 생각과 기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용은 수동적으로 우리 삶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다. 감정의 수용은 감정을 - 기쁜 것이나 슬픈 것이나 -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며, 나를 개방하여 감정을 위한 공간을 만들며, 감정을 대상으로 투쟁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고 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의식하에 적극적이어야 이루어지며, 적극적인 수용으로써 우리의 삶을 최대로 발전시킬 수 있는 행위를 취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절망의 고통에 휩싸여 있을 때 술, 담배, 폭식, 근심 등으로 자학하는 대신에 고통스러운 감정을 수용한다면, 수용과 동시에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가치에 따른 행위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수용하기 위한 첫걸음은 의식적으로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다른 나를 통하여 나의 본질을 깨달아야 한다.

무의식적이고 자동화되어서 '나'라고 이야기 되는 것들, 나의 직업, 사회적 지위, 평판, 지식, 외모, 능력, 관계, 집안내력, 믿음, 정치성향, 국가관, 민족관, 종교관 등은 모두 나를 꾸미고 있는 "무엇"이지 '나' 자체는 아니다. 가면 없는 나를 명료하게 깨어있는 상태에서 의식적으로 바라보아야 왜곡된 감정을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겪어야 하는 참담한 현실들이 분명히 있다. 즉 아픔(pain)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더욱 부정적인 감정을 더하여 고통(suffering)을 만들고 이 고통이 우리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이 고통에서 충만하게 깨어서 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중요한 가치를 위하여 나아가야 하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은 힘들고 어두운 시간이지만, 각자의 아픔을 수용하면서 중심적 가치를 공유할 때 또 다른 세상에서 지혜로운 삶(unconditioned happiness)의 방법으로 조우하게 되리라고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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