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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

청진기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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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4.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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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식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 엄중식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얼마 전 병동에서 회진을 도는데, 한 쪽에서 큰 소리가 나며 작은 소동이 일었다.

알아보니 전공의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언쟁이 벌어져 과격한 말이 오고 간 상황이었다. 보호자 측에서 불만을 제기해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공의는 나름대로 필요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은 했으나 뜻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사소한 말실수로 보호자가 과격한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이에 담당 교수가 보호자에게 상황을 이해시켰고, 보호자는 전공의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아마도 의사들에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 할 것이다.

사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병원에 접수되는 민원을 보면 시설이나 시스템, 진료 결과에 대한 불만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말'에서 시작된 불만이다.

직원 응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임상경과, 진단·치료·예후에 대한 설명 부족, 의료진의 말투, 성의 없는 태도 등등…. 참으로 다양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2000년대 이후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엄청난 양의 입시 공부를 견뎌내느라 다른 일을 경험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

거기에 의대 입학 후부터 전공의 기간까지 좁은 인맥과 정해진 환경을 전전하다보니 비의료인들의 생각이나 처지 그리고 말과 행동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처하기가 어렵다. 반대로 환자나 보호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이렇게 해도 문제가 있고 저렇게 해도 꼭 잘 된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는 식의 설명을 듣게 되면 누구인들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수십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환자와 의사의 소통, 도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1년차 전공의 선생들이 몇 십분 씩 설명을 해도 검사를 안하겠다는 환자가 담당 교수의 짧은 설명은 쉽게 이해하고 동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수의 권위나 환자의 편견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담당 교수가 환자와 보호자가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 눈빛·표정·태도 등의 비언어적인 소통 방법으로 긍정적인 의견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럼 전공의 때부터 효과적인 소통법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 불행히도 현재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얼마 전부터 의대에서 환자와의 소통 및 이해에 관한 교육 시간을 할당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 교육 과정을 점차 늘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충분한 시간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의대를 졸업한 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고객만족' 차원에서 직원 교육 형태로 이를 위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으나 정작 의료진, 그 중에서도 전공의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고, 교육이 이뤄져도 참석률이나 교육 태도를 보면 소극적이다 못해 비협조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필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형을 만나 충돌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소통의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좋게 말해서 스스로 배운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된 소통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반성 속에서 나름의 소통의 방법을 익힌 것이다. 그래서 그 수준과 올바름은 가늠할 길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선진국에서의 전공의 교육은 과연 어떨까. 캐나다의 경우 장기간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CanMEDS라는 교육 프레임을 개발했고, 이 교육 프레임은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일곱 가지 역할을 기초로 구성돼 단순히 의과학 지식이나 술기를 제공하는 지극히 평면적이며 좁은 의사가 아닌 모든 면에서 전문가(전문의)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의사를 육성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한 많은 투자는 국가가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병원에서 가장 우선하는 투자 분야는 건물·시설·의료 장비 등이다. 그중에서도 수가 보전이 잘 이뤄진 임상과나 의료 행위에 대해 우선적인 투자가 이뤄진다. 그러나 '고객만족'의 단계를 지나 '고객감동'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는 지금, 초현대적인 병원 건물이나 최첨단 의료기기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만족을 줄 수는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고객감동'은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고객감동'은 차가운 콘크리트와 금속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의료인의 말과 행동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환자에 대한 존중과 진심어린 이해만 있으면 간단한 인사나 위로만으로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병원 경영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이요클리닉의 경우 1년 예산의 2/3가 직원의 급여와 복리후생에 사용된다고 한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수가 구조의 우리나라 병원이 어쩔 수 없이 높은 인건비 비율로 고생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들은 의료의 본질, 고객감동의 기본은 의료진을 비롯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람에게 투자하고 있다. 메이요클리닉의 경영진이 우리보다 경영능력이 없어서 인건비로 전체 예산의 2/3를 사용하는 것일까? 많은 돈을 들여 투자한 하드웨어들은 운용과 동시에 감가상각이 시작돼 바로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투자하면 할수록 가치가 높아지게 되고, 동기가 부여되면 스스로 투자를 하고 자기 개발을 하기 때문에 병원의 가치는 그 배로 오르게 된다. 

요즘 들어, 의료계의 앞날의 지금처럼 어두울 때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근대사의 질곡을 뚫고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이었듯, 의료계도 다음 세대에 대한 교육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기울여야 한다.

환자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의사, 주변 사람이나 조직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의사, 우리 별에는 그런 의사들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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