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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포기에서 피어나는 창조적 인생

청진기 포기에서 피어나는 창조적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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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1.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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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주(세연가정의학과·아크로마인드연구소 원장·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 송향주(세연가정의학과)

의사로서의 생활을 한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한 곳에서 개원을 한지도 올해로 20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성장한 동네 어린 친구들이 결혼해서 자기 아이를 데려오는 것을 보면 지루하게 한 곳에 머물러 있는 나의 소소한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삶의 어려움으로 힘든 생활을 하는 이웃들도 많이 있으니 이럴 땐 나의 마음도 무거워지곤 한다.

며칠전 고부간의 문제로 힘들어 하는 A씨가 진찰실에 들어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20여년을 함께 보면서 살아온 나의 이웃 중 한 사람이다.

"선생님, 전 도저히 화가 나서 못 살겠어요. 시어머니가 용돈을 올려 주지 않는다고 집에 오셔서 드러 누워 계세요."

시어머니는 과도한 쇼핑으로 인해 용돈이 모자라고 그 때마다 남편이 몰래 주곤 하다가 탄로가 나면서 남편과도 심하게 다투었다고 한다.

십여 년 이상의 고부간 갈등은 A씨의 신체적 증상도 악화시켜 빈번하게 포진성 질환 및 만성 두통으로 병원 방문이 이어졌고, 최근 들어 불면증과 우울감도 호소했다. A씨는 주위 사람에 대한 분노와 상처로 억울하고 분한 감정과 행동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보였다. 마치 상처에 분노의 물을 주듯이….

그는 분노라는 감정의 괴물과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밧줄 한 쪽 끝을 붙들고 있고, 감정의 괴물은 반대쪽을 잡고 있다. 둘 사이에는 바닥이 안 보이는 깊은 구덩이가 있다.

힘으로 당겨서 감정의 괴물을 구덩이에 빠뜨리기고 싶지만, 있는 힘을 다해 뒤로 잡아당길수록 괴물도 힘을 다해 점점 더 구덩이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사지를 허우적댈수록 더욱 모래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우리는 대부분 이러한 경우에 분노라는 감정의 괴물을 사라지게 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며 감정을 소진한다. 아픈 생각과 느낌을 밀어내 버리고 회피하려고 힘겹도록 애를 쓴다.

기분전환을 하려고 텔레비전·음악·컴퓨터·책에 주의를 기울여 보기도하고, 친구와 가족을 회피해 방 속에 혼자 틀어 박혀 있고, 일로부터 도망가고, 자신을 학대하기도 한다.

내 처지가 왜 이런지 분석하고, 나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드냐고 불평하면서, 담배·술로 달래보기도 하고 긍정적인 주변의 자원을 이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그런데 그 아픈 생각과 느낌이 어디로 가는지를 관찰해 보면 실상은 없어지지는 않고 여전히 껴안은 채 살고 있으면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건강을 악화시키고 가족 및 사회관계의 갈등을 야기하고 경제적 시간을 낭비하는 등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것일까? 우리는 왜 매번 감정통제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기분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누구나 기분 좋기를 바란다. 나쁜 기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불쾌한 느낌을 없애려고 지속적으로 애를 쓰는 것이다.

불쾌한 생각과 느낌을 피하거나 없앨 수만 있다면 그것이 비록 장기적으로 효과가 없더라도, 또한 그 노력의 결과가 흔히 고통으로 끝나더라도 우리는 무엇이든지 우선 시도하게 된다. 즉,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려는 감정통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이 좋은 기분과 같다는 문화적 바탕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을 통제라는 의도로 강화한다. 모두 '행복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해야하기 때문에 언제나 기분이 좋아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통제 수단 즉 '나쁜' 느낌을 줄이고 '좋은' 느낌은 늘리려는 시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게 된다. 통제수단은 우선적으로 '나쁜' 생각과 느낌을 없애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데, 즉 체험을 회피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느끼는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내가 갖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기억과 경험들, 즉 우리는 내가 지금 있는 이곳에 어떠한 방법으로 왔는지, 버스·지하철 또는 자가용으로 왔는지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이 기억을 지우도록 해보자.

지워졌는가? 기억나지 않는가? 텔레비전에서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나는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가?

나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도는 행복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복은 좋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느낄 수 있는 것을 갈등 없이 느끼는 것", "행복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느끼는 것", "행복은 모든 인간 정서를 기꺼이 느끼면서 살아가는 풍요롭고,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행복이 곧 좋은 기분이라는 인지적 융합을 넘어서야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분노라는 감정의 괴물과 싸움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힘을 길러서 굴복시키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해결책은 분노와의 싸움에서 밧줄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야 감정의 괴물이 아직 저 쪽에 존재하고 있어도 그 싸움에 휘말리지 않게 되고 이제 내 인생에서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진정한 것을 고를 수 있다. 좀 더 유용한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밧줄을 놓는 포기가 내 인생의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태도에 대응하는 나의 느낌과 생각을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갈등을 키우지 말고, 나쁘다와 좋다, 또는 옳다와 그르다로 구별하고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를 진정하게 바라보면서, 느낌과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있을 자리를 마련해 줄 때 비로소 나의 인생에서 가치있는 행위를 창조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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