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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청진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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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0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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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경기 군포 현대중앙의원장)

▲ 이현석(경기 군포 현대중앙의원장)

정기 구독하는 한 월간지에서 '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이라는 작품이 논픽션 공모 최우수작으로 선정돼 실렸다. 한 친척의 장례식에 적은 조문객이 온 것이 계기가 되어 3명의 대학생과 3명의 졸업생이 의기투합해서 최근 15개월간 서울 지역에서 무연고 사망한 83명을 추렸더니 뜻밖에도 그 중 77명이 남자였다.

저소득 독거 노인은 여자가 71%로 더 높은 점을 감안하면 특이하게도 매우 높은 비율이었다. 그 사연을 알고자 했던 이들은 사망자가 몰려있는 50~70대의 나이와 과거 직업 그리고 결혼 여부를 감안해 대표성이 있는 7명을 추려 심층취재를 4개월 동안 했다.

그 중에서 6명은 경제적인 이유로 좌절하면서 4명은 가정이 해체됐고, 2명은 미처 가정을 꾸려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 갔다. 그리고 마지막 1명은 프로복서가 되려는 꿈이 좌절되면서 술과 폭력으로 역시 가정이 파괴된 경우이다.

이들의 경우는 우리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나, 남자의 경우 경제적인 실패로 인한 좌절이 얼마나 심각하게 자아를 파괴시키며 최악의 경우에는 대인기피증과 알코올중독 속에서 몰락할 수도 있다는 심각성을 제시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영화 중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제니퍼 존스가 주연한 <황혼(Carrie)>이라는 영화가 있다. 시골에서 무작정 시카고로 온 가난한 처녀(캐리)와 고급 레스토랑의 지배인이지만 가정에서 소외된 남자(조지)의 만남은 결국 레스토랑에 있는 현금을 들고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절도범이라는 이유로 취직이 번번이 실패하자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조지를 위해 성공한 정치인이 된 조지의 아들과 만나도록 유도하고 캐리는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피신한다. 그러나 자괴감으로 아들 근처까지 갔다가 못 만나고 돌아온 조지는 노숙자로 전락하고 캐리는 여배우로 성공한다.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조지를 발견한 캐리가 반가워하면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몇 개의 동전만을 집어들고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이 뭉클했던 올드 무비이다.

어려워도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여자와는 달리 사회적 실패를 했을 때 한없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남자들의 의외로 연약한 모습을 담은 영화였다.

이제 노후 준비 없이 퇴직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베이비부머의 서글픈 모습은 물론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쉬운 상황도 아니다.

잘 나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은퇴를 하고 능력이 있음에도 새 직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 체력도, 지적 능력도, 경험도 충분한데 벌써 현업에서 물려나는데 대한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는 그의 저서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에서 서울대 교수라는 존경받는 직업과 65세까지의 확실한 정년 보장이 있음에도 스스로의 재산과 수입을 공개하면서 본인도 베이비부머의 서글픈 삶에서 예외가 아님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랑 노래로만 알았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식들에게 올인하며 사회적으로는 가난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험한 세상에서 다리가 됐던 우리세대의 노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험한 세상(퇴직)에 홀로 섰을 때 우리를 위해 다리가 되어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서 세상의 다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우리 세대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간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아픔을 토로하고 배려하며 사회적으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면서 정신적으로 좀 더 성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다리가 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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