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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생명

청진기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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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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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 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마취과 전공의 생활을 시작한지 반 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종류의 수술을 볼 수 있었다. 맹장염이나 탈장 같은 간단한 수술부터 뇌종양·폐암이나 소아비뇨기과·소아신경외과 수술과 같은 복잡한 수술까지. 내가 본 수술들은 하나하나 모두 흥미로웠고 인상 깊었다.

어떤 수술들은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보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볼 때마다 항상 인상 깊은 수술이 하나 있다. 바로 제왕절개술이다.

제왕절개술이 특별한 이유는 수술의 난이도나 마취의 난이도 때문만은 아니다. 부분의 수술이 우리 몸의 비정상적이고 오래된 부분을 떼어내는 개념인 것과는 달리 우리 몸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양수와 피를 뒤집어쓴 아이가 배에서 나올 때, 탯줄을 자르고 아이가 소아과 의사가 기다리고 있는 테이블로 옮겨질 때, 그리고 아이가 첫 울음을 터뜨릴 때.

이 모든 순간 수술방에 있는 많은 이들의 시선은 산모가 아닌 아이에게 쏠린다. 소아과 의사가 아이가 괜찮은지 확인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인류의 일원으로 합류한 신입을 환영한다. 언제나처럼 정신 없이 돌아가는 수술방이지만 이 때만큼은 그 어떤 성지보다도 성스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로운 순간이라고 마냥 넋을 놓고만 있을 수 없다. 제왕절개술이 그렇게 여유 있고 쉬운 수술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모가 금식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많고 아이에게 마취약이 가는 것을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마취도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취과 의사를 더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순식간에 많은 양의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제왕절개술에서는 500cc 내외의 출혈이 있다. 하지만 산모의 상태에 따라서 출혈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내가 본 가장 심한 경우는 출혈이 5000cc가 넘었다.

60kg 기준으로 몸 속에 있는 피보다 더 많은 피가 몸 밖으로 나온 것이다. 문제는 이 많은 피들이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났다는 것이다. 수액과 피를 최대한의 속도로 주었지만 출혈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혈압은 점점 떨어졌다.

산모의 피부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피검사를 위해 뽑은 피는 물에 빨간 물감을 타놓은 듯했다. 피검사에서 산모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나오지도 않았다.

혈압을 높이는 약을 아무리 써도 수축기 혈압은 두자리를 넘길 줄을 몰랐다. 잘못하면 심정지가 올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산모가 저승사자와 악수를 하려던 순간 다행히 출혈이 어느 정도 조절되기 시작했다. 활력징후 및 검사 결과 역시 점점 안정화 됐다.

수술이 끝난 후 산모는 중환자실로 이동했고 며칠 후 산부인과 전공의를 통해 산모가 무사히 퇴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제왕절개술을 볼 때마다 위의 수술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과정인지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을 준 대가로 그의 생명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망상도 한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당신의 목숨을 담보로 우리들은 낳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가 특별한 이유는 이것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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