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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망향가 '대니보이'

청진기 망향가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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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8.0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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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 황건(인하의대 교수 인하대병원 성형외과)
며칠 전 나는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열리는 해부학회에 참석했다. 영국에 유학하고 있는 아들과 딸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서 나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함께 유명한 술집거리인 템플바에서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기네스 맥주를 맛보았다. 기네스의 로고를 보니 기둥이 있는 프레임 하프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이 아이리시하프, 즉 켈틱하프(Celtic harp)로서 아일랜드·스코틀랜드·웨일즈에 살던 켈트족들의 민속악기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하프를 연주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하프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며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기호로 하프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회 마지막 날 만찬장에는 연주복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하프 연주자가 앉아 연주하고 있었다. 목가적인 켈트음악의 하프 선율이 연회장에 잔잔히 뿌려지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오 대니보이'를 부르며 하프를 연주했다. 청중들은 박수를 쳤고 그녀는 어린아이를 안듯이 하프를 안고 문 밖으로 사라졌지만 어딘지 애수가 깃든 여운은 길게 남았다.

들은 것은 아일랜드 민요인데 머리에 떠도는 것은 지난해 가을맞이 가곡의 밤의 마지막 순서에서 성악가들과 청중들이 함께 불렀던 '고향의 봄'이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 사람들이 고향인 런던데리를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를 듣고, 겨우 며칠 고향을 떠나있는 내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떠올리게 되니 나는 집에서 참 멀리,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노래는 아일랜드 북부의 런던데리라는 도시에 살던 제인로스(Jane Ross, 1810-1879)라는 민요수집가가 집에서 창 밖을 내다보다가 한 집시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악보에 옮긴 것이 제목도 없이 '아일랜드 고가집'에 실렸다고 한다.

'Londonderry air'라는 이름은 이 노래의 곡조가 아일랜드 북부의 도시인 런던데리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이다. 멜로디가 하도 고와 그 후 여러 사람이 가사를 붙였으며, 그 중 하나가 아일랜드 시인 프레드릭 웨델리(Fredric E. Weatherly)가 1913년 쓴 시 'Danny Boy'로서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보내는 애틋한 사랑의 노래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음악책에 있는 '아 목동아'의 가사를 기억해 보았다. "아, 목동들의 피리 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 여름은 가고 꽃은 떨어지니, 너도 가고 또 나도 가야지 저 목장에는 여름철은 가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아 목동아 내 사랑아."

같은 식탁에 앉았던 한 여교수는 "요사이 젊은 세대들은 이 오래된 노래에 별로 흥미가 적으며,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이 망향가(望鄕歌)삼아 지금도 많이 부르고 있다"고 했다.

"저 초원에 여름이 올 때면 네가 돌아와 줄까. 계곡이 숨을 죽이고 눈으로 뒤덮일 때면 네가 돌아와 줄까. 햇빛이 비추어도, 그늘이 드리워도 난 여기서 기다리네. 오 대니 보이 오 대니 보이 내 사랑하는 아들아!"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어둡게 그림자 진 슬픈 곡을 음미하니 노랫말이 묘사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모습은 우리의 정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타의에 의해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 억압 속에서 그리는 고향의 평화롭던 옛 정취, 이러한 노래의 배경이 우리에게도 감동을 주는 것 같았다.

이제 연구실에 돌아와 앉았다.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며칠 전 학회가 끝나고 영국의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이 벌써 보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만찬에서 들은 그 노래가 애수어린 하프반주와 함께 귓가에 맴돈다. 어서 방학이 돼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다.

아름다운 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산의 초록처럼 자생하는 것인가? 나도 유튜브에서 'Celtic Londonderry air'를 찾아내어 집에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망향가처럼 웅얼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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