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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환자는 의사의 전부' 이기 때문에

청진기'환자는 의사의 전부' 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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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6.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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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주(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신명주
(세브란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R1)
한 의사가 블로그에 남긴 글 중 한 구절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환자는 의사의 전부다.'
정신없이 마취를 하던 어느 날, 다음 수술은 이제 갓 돌이 지난 소아 환자였다. 환자를 데리러 전처치실로 갔다. 아이는 보호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마취동의서는 옆에 있던 인턴 선생님께 뽑아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보호자에게 마취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의 경우 보호자들이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써서 설명을 했다. 마취하는 과정, 마취 종료 후 보호자를 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병실로 돌아가서 아이가 불편해 할 수 있는 증상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인턴 선생님이 뽑아온 마취동의서를 보여주며 해당 부분에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보호자는 내게 "설명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순간 멈칫했다. 보호자의 말투에는 불신이 완연히 느껴졌다.

"지금까지 설명드린 내용이 다 여기 들어있는 내용입니다."라고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보호자는 "글이 많아서…" 라고 말끝을 흐렸다.

나는 마취동의서에 있는 내용 중 설명하지 않은 내용(수혈이라든가 비급여 항목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왜 이런 것을 설명하지 않았는지 설명했다(수혈이나 비급여 항목을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수술이라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자 보호자는 해당 부분에 서명을 했다. 보호자의 이런 반응에 나는 무척 화가 났다. 환자가 나를 불신한다고 느꼈고 그 환자에 대한 애정이 뚝 떨어졌다. 추가 설명할 때의 말투는 매우 퉁명스러웠고 환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동안에도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불친절한 의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에 대한 나의 의료행위가 '불친절해'지지는 않았다. 보호자가 나를 불신한다는 느낌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하루종일 화가 나서 씩씩거렸지만 환자는 다른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마취해주었다. 수술이 끝난 후에는 최대한 부드럽게 깨워주었고 잘 깼는지 계속 확인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1년 남짓 의사로 일하고 또한 다른 선배 의사들을 지켜보면서 의사들 사이의 신기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많은 의사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환자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환자나 보호자가 난리를 치는 진상이거나 의사를 불신하는 태도를 취해도, 심지어 환자나 보호자가 본인을 때려도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사람에게 해를 가하기도 쉽지만, 그 어떤 의사도 고의적으로 환자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정부가 의사를 괴롭히고, 환자들이 의사들을 믿지 않아도 그들은 자신을 찾아온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왜일까?

어쩌면 '환자가 의사의 전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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