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7 13:15 (토)
청진기 친구의 죽음

청진기 친구의 죽음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3.05.27 09:08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석(경기 군포·현대중앙의원장)

▲ 이현석(경기 군포·현대중앙의원장)
레지던트 2년차 때의 일이다. 중학교 동기인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그 친구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섬유 중개업으로 큰 돈을 벌어 필자가 근무하던 병원 근처에 5층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무역회사와 독서실 등을 직영하고 있는 소위 잘나가는 친구였다.

바로 병원 옆에 직장과 집이 있는 덕분에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친구 아버님이 70년대에 뇌졸중을 앓으셔서 거동이 불편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진찰을 받도록 권유해 시행한 CT와 MRI 검사 결과 완치는 불가능해도 수술을 받으면 어느 정도는 증상의 호전이 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와 수술을 받고 다소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었다.

그 후 그 친구가 당시 금액으로 150만원의 거금을 주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있으면 사용해 달라고 맡겨서 별도의 통장에 넣어 보관하다가 나중에 경제적인 이유로 수술을 포기하였던 폐암 환자에게 수술 받도록 전해준 적이 있었다.

하루는 그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고 우연히 배를 진찰한 결과 매우 심한 간비대를 발견했다. 다음날 병원에 입원시켜 검사를 한 결과 간의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알고 보니까 사업으로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있었던 심한 알코올 중독 환자였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거의 매일 소주를 마시며 풀고 있었으니 간이 버터 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강제로 술을 끊게 하고 나중에는 격리해 수용하는 요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간이 호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다른 병원으로 가면서 연락이 다소 뜸해진 어느 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더니 이미 혼수 상태였고 결국 며칠 후에 사망했다.

술을 끊었다가 다소 간이 호전되자 방심을 하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해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내가 좀 더 자주 만나 강력하게 관리했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가는 것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후 진료실에서 간질환 환자가 오면 간수치가 정상이라고 간이 정상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주의주게 되었고 특히, 만성 간질환자가 일시적으로 간수치가 정상이 되었을 때 간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경고를 하는 것이 버릇처럼 됐다.

의사는 검사 결과가 정상일 경우 그 검사방법에서는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으로 '검사 결과는 정상입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환자는 해당 장기에는 어떤 문제도 없는 완전한 상태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검사를 하기 전에 그 검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야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CT나 MRI를 하면서 2~3mm 크기의 암은 놓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검사 자체를 불신하고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1차 의료를 하는 개원가에서는 검사하기를 꺼리면서 확진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럴 경우 필자는 웃으면서 "먼저 저를 하느님으로 만들어 주시면 확실하게 말씀드릴께요. 하지만 의사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검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설득하기도 한다.

진료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검사를 권유해야 하나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과잉진료에 대한 불신으로 망설이는 환자들이 많은 현실에서 검사의 한계를 설명하고 검사 결과에만 의존하지 말라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만성 간질환 환자가 일시적으로 간 수치가 정상으로 되었을 때만큼은 간수치가 나쁠 때보다 더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 아마도 가난한 환자에게 사용해 달라고 선뜻 거액을 기부한 선한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