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마음'으로 '경계없는 사랑'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경계없는 사랑'으로…
  • 이영재 기자 garden@kma.og
  • 승인 2013.03.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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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
권현옥 원장(경남 진주·권현옥산부인과의원)

그의 진료실에는 여러 해 동안 해외의료봉사를 통해 만났던 수많은 이들이 사진 속에 자리한다. 그 가운데 사뭇 다른 한 컷이 눈에 들어온다. 직접 찍었다는 장엄한 에베레스트 준령의 모습이다. 산이 좋아서일까.사진을 좋아해서일까. 특별한 사연을 간직했을까. 네팔에서는 에베레스트를 사가르마타(Sagarmata)라고 부른다. '세계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진료실에 에베레스트가 있었던 이유는 조금씩 드러났다.

제2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권현옥 원장(경남 진주·권현옥산부인과의원)이 지나온 시간에는 세상을 향한 가슴 떨림이 있고 울림이 있다. '평범한 의사'라는 자평속에 엮어온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소외받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며, 그들의 삶에 끼어들며,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렇지만 끊임없이….

그것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 권현옥 원장은 인생의 촛불이 언제가는 꺼지겠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태우다 가길 소망한다. ⓒ의협신문 김선경
불자인 그는 평소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집착없이 베푸는 보시)'를 가슴에 새기고 산다. 베풀었다는 생각 조차 마음의 짐이 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이번 수상은 반갑다.

"존경하는 고 이태석 신부님께서 받았던 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했습니다. 게다가 5년전 적금을 깨서 시작했던 네팔 룸비니지역 의료봉사를 이번에 일곱번째 다녀오면서 경비가 소진돼 좀 걱정이었습니다. 속되지만 앞으로 열 번은 더 다녀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의사이기에 의술을 통한 봉사를 우선 떠올리지만 그는 사실 세상과의 소통에 먼저 나섰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여성쉼터·성폭력상담소 등에 관여하면서 소외된 이들의 인권 회복과 사회의 편견을 줄여나가는데 힘을 보탰다.

▲ ⓒ의협신문 김선경
"우연한 기회에 마산여성교도소에 진료를 가게 됐습니다. 일주일전부터 막연한 두려움에 잠을 설칠 정도로 예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면서 제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됐습니다. 누구보다 소박하고 순수한 이들에 대한 저의 비뚤어진 시선을 탓했습니다. 그 이후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법정에 나서기도 하고 무방비로 노출된 장애인들의 성폭력 실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조금만 돌아보면 의사들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작은 관심이지만 받는 이들은 몇 배 크게 받아들입니다. 의사들이 사회 각 영역에 대한 활동을 늘려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불합리한 의료제도와 왜곡된 현실을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그들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의사가 많아진다면 사회에서도 우리의 아픔을 알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주시의사회에는 장애아동봉사단체인 '나누미'가 있다. 이 모임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그들을 향한 손짓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밝고 맑은 웃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날' 행사에 갔다가 진주에 120명의 장애아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폐쇄적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조차 그들을 세상에 내놓기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진주시의사회에 상황을 알리고 의견을 구했는데 50여분의 선생님께서 동참해주셨습니다. 해마다 '어린이날'·'바다캠프'·'학예회'·'크리스마스' 등 네차례의 공식적인 행사를 갖습니다. 작은 선물에 '우리가 너희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겠다'는 마음을 담아 전해주면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바다캠프 때는 지역적으로 바다와 그리 멀지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70%의 아이들에게는 처음보는 바다였습니다.

▲ ⓒ의협신문 김선경
재롱잔치로 열리는 학예회는 가족들의 눈물이 이어집니다. 그들의 무대는 그 자체가 감동입니다. 나누미 모임은 회원 50여명이 한달에 2만원씩 회비를 냅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모임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사람이 큰 일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여러사람이 작은 정성을 모을 때 더 큰 의미로 돌아옵니다."

그가 의료봉사에 뜻을 두게된 데는 아픔이 있다. 인생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했던 벗을 잃게 되면서다. 그보다 그를 더 잘 알았던 친구의 죽음은 그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이끈다.

"고인이 된 전지혜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동창이자 같은 산부인과 의사였습니다. 그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가 10주기입니다. 꿈을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하고, 가족을 이야기하고, 어느정도 안정되면 함께 의료봉사를 떠나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별해야 했습니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와 약속했던 의료봉사를 더 미룰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봉사를 떠날 때는 항상 그 친구와 함께 합니다. 제 삶을 조금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은 친구의 몫까지 살아내야 하는 까닭입니다. '지혜가 참 좋아하겠다'는 되뇌임은 제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그의 봉사에는 사람이 남는다. 맺은 인연이 그리워 또 다른 인연을 만든다. 상처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감싸주고 소중한 그들의 마음속에 그의 마음을 덧입힌다.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여의치 못한 현실을 탓하면서….

"2004년경부터 경상남도의사회·경상대병원·열린의사회 등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캄보디아·베트남·네팔·인도·아프리카의 오지로 해외 의료봉사를 나서게 됐습니다. 많이 이들을 만났고 그만큼 배우고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12월 경상대병원 봉사팀과 함께 네팔 보카라지역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봉사팀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저는 5일을 더 머무르면서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지역으로 봉사를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개인적인 봉사의 첫 환자인 마씨다를 만나게 됐습니다. 너무 이쁜아이였지만 농아였습니다. 말문을 틔어주길 바라는 듯한 그 아이의 가녀린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마지막 환자는 마씨다의 동생 아리였는데 입천장에 구멍이 난 상태였습니다. 수술하면 살 수 있는데…. 귀국해서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고, 대학동창들과 지역 동료의사들이 온정을 보태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함께 했던 분들과 함께 '108자비손'이라는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네팔 봉사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년이 될 지 모르지만 그리 머지않은 시간안에 네팔·인도 등지에 여성전문병원을 세우고 그 곳에서 나머지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제 역할은 또 다른 이들이 그 곳을 찾을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한 사람의 첫 발자국이 길이 되는 것처럼 누군가 또 다른 이들의 발걸음이 그 곳으로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인생의 촛불이 언제가는 꺼지겠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태우다 가길 소망한다.

주고받는 마음이 모두 하나가 될때까지, '경계없는 사랑'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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