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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엄마 같은 의사

청진기 엄마 같은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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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11.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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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 정명희(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직업 탐구 숙제를 하던 막내가 '좋은 의사가 뭐야?' 물었다. '엄마 같은 의사'라고 답하니 웃었다. 정말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전공의 시절 존경받던 교수님은 참 엄격한 분이셨다. 회진시간엔 차트 없이 외워서 보고하게 하여 맡은 환자에 대해서는 항상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중환이 생겨 밤을 새웠든 말든 결과나 경과에 대해 질문 받았을 때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의사의 무식은 죄'라며 천둥 번개보다 더한 불호령을 내리셨다. 나는 그 혹독한 수련 덕분에 여태껏 겁도 없이 환자 진료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환자가 보이는 작지만 중요한 증상을 제때 알아채지 못해 나빠지는 경우 가슴속엔 주홍 글씨가 새겨질 것이리라.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참으로 헌신적인 선생님이 계셨다. 교장 연수를 받고 있을 즈음, 사모님이 피곤해하는 날이 잦았다. 아내가 과로해서 그런가 싶어 대수롭잖게 병원 가보라고만 했다.

정기 신체검사에선 이상이 없었기에 보약과 영양제를 먹으며 물리치료, 통증치료 하느라 온 병원에 다녀도 몸은 물먹은 솜 같았다. 혹시 '갱년기 증상인가?' 싶어 산부인과를 찾은 날이었다.

소변 검사 결과를 본 의사가 내과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콩팥이 다 망가져 더는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신장이식을 하여 지금은 몸 상태가 좋아지자 마음은 더 너그럽게 되었다며 허허 웃으신다.

환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줄을 타는 광대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가벼운 병을 중병으로 짐작하여 환자를 두려움에 떨게 하거나 반대로 중병을 너무 가볍게 여겨 적절한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하지 않겠다는 조심스러운 태도가 아닐는지….

환자가 앞에 있으면 내 가슴엔 늘 불안이 깔린다. 새로운 환자는 새롭게 보면 되지만 자주 와서 익숙하면 매너리즘에 빠져 자칫 중요한 사안을 간과할까 봐서다. 생전 처음 보는 이를 대하듯 환자를 낯설게 보는 것이 중요하리라.

스위스 치즈의 구멍처럼 요리조리 빠져 끝까지 가게 한 진단에 소중했던 힌트, 그것을 좀처럼 알아채지 못하고 피상적인 증상 완화에만 매달려 있었을까.

선생님은 그날 산부인과에서 용한 의사를 만나 참 다행이라며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가 봐요. 아직 더 살다 가라는 뜻이겠지요." 하신다. 아픔 가운데서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그분을 뵈면 짠해진다.

좋은 의사란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사, 자신보다 환자에게 이롭도록 하는 의사, 환자를 측은하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의 의사, 환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지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의사, 환자를 공평하게 대해주는 의사, 실수를 환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의사, 알기 쉽게 설명하고 풀이를 잘해주는 의사'라고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이 실수로 놓친 것도 딱 잡아낼 수 있는 동물적 직관력을 지닌 의사가 아닐는지 싶다.

마음이 아파하는 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성직자처럼 몸이 아픈 사람의 병인(病因)을 찾아 치료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사명일 것이다.

'문지방을 넘는 순간 그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안다. '라는 어느 점술가의 광고처럼 내게 신통력이 있기를 바래야 할까. 그보다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아기가 아픈 것인지, 배가 고픈 것인지, 기저귀가 젖은 것인지 알 수 있게 되기까지 지극정성을 다하는 '엄마 같은 의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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