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이순형 교수
캠퍼스 이순형 교수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2.03.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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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란 생활 수단이었던 직업의 질곡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는 아주 귀하고 자유로운 생활의 시작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기생충의학 발전의 견인차 역을 맡았던 인산(仁汕) 이순형 교수는 "늙은 기생충이 기생생활을 끝내고 자유롭게 탈피하는 것이 정년 아니겠냐"며 "이제야말로 인생의 목표를 위해 쓸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맞게 됐다"고 정년을 맞는 감회를 밝혔다.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어 인간으로 태어나 부모슬하에서 양육되며, 학교에 들어가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후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며 살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제 전공의 관점에서는 기생생활(parasitism)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교수는 "무능하고 우둔한 제가 신통하게도 학교와 전공을 잘 선택하고 은사와 직업의 선택을 잘 한 까닭에 성공적인 기생생활을 할 수 있었고, 오늘의 영광을 맞게 됐다"며 "훌륭한 숙주가 되어 주신 여러 은사님과 선후배 동료 교수들, 그리고 모교와 교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저 같은 둔재라도 좋은 대학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 잘 배우면 유용한 인재로 양성될 수 있음이 증명된 셈입니다."
이 교수는 "범재를 영재로 키워내고, 제자의 대성을 지켜보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자 보람 아니겠냐"며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를 만드는 일이 교육의 기본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 교수가 누구도 선택하지 않으려 했던 기초의학 그 중에서도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된 배경은 세심하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남들보다 자신을 더 낮추며 그리고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한데 어우러진 평소의 인생관과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3대 국민병으로 결핵, 기생충, 나병을 꼽았지요. 당시 결핵과 나병은 연구하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기생충만은 예외였습니다. 기왕에 힘을 보태려면 없는데 보태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 교수가 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국내 기생충학의 개척자 고 서병설 교수의 강의에서 받은 영향이 적지 않다.

"한 번은 서 교수님께서 강의시간에 플라톤의 동굴에의 비유에 대해 일러주셨습니다. 동굴 밖에는 빛나는 태양이 있는데 사람들은 동굴 벽에 비친 태양만 보고 있다는 거예요. 고개를 180도 돌리면 진짜 태양이 있는데 모두들 벽만 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들이 다 No라고 할 때 Yes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이 교수는 1962년 졸업하자마자 미개척시대의 황무지와 같았던 기생충학교실의 문을 두드렸다.

"변변한 실험장비와 연구비 하나 없이 주머니를 털어 가며 쓴 논문과 연구물들이기에 애착이 더한 것 같습니다.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졌다고나 할까요. 만연했던 우리 나라 장내 기생충을 격감시켰던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것 또한 적지 않은 보람입니다."

우여곡절 속에 먹을 것 못 먹으며 묵묵히 연구에 매달린 결과 이 교수는 355편의 주옥같은 논문을 남겼다.
이 교수에게는 열악한 기초의학의 현실 속에 좌절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1970년대 기초의학계의 유일한 버팀목이던 록펠러재단 연구비가 사라지면서 한 때 학생 실습비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얼마 안돼서 이마저 사라지고 그야말로 연구에 손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 빚어졌지요. 당시 중앙의대에 연구생제도가 남아있었습니다."

중앙의대로 자리를 옮긴 이 교수는 5년 10개월을 근무하다 다시 본교로 되돌아오는 변화를 겪었다.
"후배들이 반대하면 못 돌아왔을텐데 오히려 부모를 공양하듯 받들어 줘서 다시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에 몸담게 됐습니다."

기초의학에 대한 빈약한 지원체계를 뼈저리게 체험했던 이 교수는 교육부 기초의학 심사평가위원회,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개발중장기 기획사업, 대한의학회 기초의학위원회, 대한의사협회 기초의학진흥기금 운영위원회, 기초의학협의회 등 기초의학 육성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한 나라에서 연간 5만편 이상의 논문이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기초의학육성발전종합계획이 큰 힘이 되어 기초의학 발전을 이끌어 주고 기초의학계가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키우고,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 교수는 "지금까지 연명 수준에 머물렀던 기초의학에 대한 지원이 대폭 확대돼 노벨상을 수상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진료에 여념이 없더라도 학생들과의 만남과 접촉의 시간을 많이 가짐으로써 뛰어난 진료기술과 해박한 의학 지식은 물론 고매한 인품까지도 전수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대 학생담당 학장보, 교무담당 학장보, 풍토병연구소장, 의학교육연수원장 등 의대 보직을 두루 거쳐 교수 직선에 의한 의대 학장 취임과 연임에 이르기까지 의학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이 교수는 외형적인 교육제도나 교육환경의 개선보다는 교수-학생간의 유대와 만남에 더 깊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교수가 학생을 만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병원을 특수법인화 하여 경영 사정이 좋아지긴 했지만 큰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환자를 보고, 연구를 하는데 매달리다 보니 학생을 보는 시간은 부속병원 시절보다 줄어든 것 같습니다."

이 교수는 '교수 여러분께 드리는 간청'으로까지 표현하며 교수-학생간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져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부덕하고 능력이 모자란 제가 분수에 넘게 모교 학장을 4년간 맡으면서 나름대로 정의와 자유에 입각한 진리 탐구의 터전을 만들고자 학문연구의 기반과 분위기 조성에 매달렸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학문의 발전은 그 핵심인 교수님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엄격한 권위나 제도, 법규로 강요해서는 학문의 자유가 침해당한다는 것이 제 소신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정부의 교육정책이나 의료정책도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말을 잘 들으면 보상을 해주고, 말을 안 들으면 내리 누르는 행태는 결코 옳지 않다"며 자율성과 거리가 있는 최근의 정부 정책에 일침을 가했다.

"병원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병원이 국가 중앙병원이라면 수입과 경영을 의사에게 책임지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국가가 병원경영에 대한 책임은 물론이거니와 연구와 학생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교수는 "오늘의 정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해 준 병원 임상 교수들과 관계자들에게 각별한 감사를 전한다"며 "기생충과의 전쟁터에서 더 과중한 부담을 감내하면서 빈자리를 메워준 교실 동료 교수들의 전우애에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스승 서병설 교수의 업적을 추앙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발견한 참굴큰입흡충(Gymnophalloides seoi)의 학명에 스승의 인명을 붙였던 이순형 교수는 2월 정년 퇴임에 앞서 후배 교수들로부터 인산주걱흡충(Neodiplostomum leei)이라는 새로운 기생충의 학명을 헌정 받았다. 학계에서는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로 학명 헌정을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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