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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 고 장세국 교수 영전에

조사 - 고 장세국 교수 영전에

  • 최동하 포항송라요양병원장 dhcp208@naver.com
  • 승인 2011.02.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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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그 길이 봄날처럼 포근하기를…

▲ 고 장세국 전 경북의대 교수
슬프다.

온갖 생명들이 살아나는 이른 봄날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32회 동기생들은 고 장세국(張世國) 교수를 떠나 보내야 한다. 아직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태산과 같은데, 더구나 장 교수가 선봉에 서야할 이 중대한 시기에, 이렇게 동기생들만 남겨두고 기어기 혼자 그렇게 떠나야 한단 말인가.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야속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인생은 구름처럼 덧없다는 옛말에 기대어 비통함을 달래 본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제행무상(諸行無常). 장 교수가 남긴 빈 자리에다 이 가르침을 올려 놓고 생전의 모습을 조용히 떠올려 본다.

장 교수는 1939년 대구에서 나서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경북의대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병원에서 인턴과정을 마쳤다. 그 후 경북대병원 및 제1육군병원 비뇨기과 레지던트를 수료, 군복무 후 서울시립 남부 및 동부병원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1973년 경북의대 전임강사로 부임, 2004년 경북대병원을 떠나기까지 32년 동안 인생의 황금기를 오로지 경북의대와 경북대병원의 발전과 후학 육성에 열성을 다했다.

장 교수의 학구열과 예리한 판단력, 뛰어난 수술기량은 많은 추앙을 받았다.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후학들의 교육에 매진, 10편의 박사학위 논문과 24편의 석사학위 논문을 지도하고, 96편의 창의적인 논문을 대한비뇨기과학회지 및 대한내과학회지 등에 발표했다.

경북대병원에서 가르침을 받은 60여 명의 문하생들은 비뇨기과 각 분야에서 장 교수의 뒤를 이어 오늘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문하생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장 교수라는 거목이 자리잡고 있다.

대한비뇨기과학회의 발전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학회의 위상을 정립했고, 1998년에는 대한비뇨기과학회장을 맡아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단결, 학회발전을 위한 디딤돌을 놓았다. 참된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늘 솔선수범했다.

2002년 9월 경북대병원 운영 초대 지방공사 울진의료원장을 맡아 경북 동북권 지역의료의 중추적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의욕적으로 울진군민들에게 한 차원이 높은 의료를 펼치고, 지역의료의 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던 중 말년에 신종양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됐음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해거름의 술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더욱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오는 장 교수. 물처럼 흐르는 세월이 자꾸만 흘러가고 있으니, 그렇게 멀지 않은 세월 안에 동기생들도 하나씩 둘씩 장 교수의 곁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먼저 가는 장 교수가 하늘나라의 어느 따뜻한 양지에다 경북의대 32회 동창회관의 터를 보아 주길 바란다. 우리가 가면 다시 동기회장으로 만날 수 있겠지. 그 때 가서 이승에서 못다 나눈 인정을 풀어볼 수 있겠지.

이제 이 세상의 일은 동기생들에게 맡기고, 평안하게 새로운 길을 떠나길 바란다. 그 길이 봄날처럼 포근하기를, 삼가 두 손 모아 빌어본다. 만날 때 헤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이제 하늘나라에서 부디 평안히 잠들기를….

2011년 2월 20일

경북의대 제32회 동기회 최동하 포항송라요양병원장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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