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사람이야 ③ DC '할인'이 아니라 '퇴원'이라구요?
나, 이런사람이야 ③ DC '할인'이 아니라 '퇴원'이라구요?
  • 김은아 기자 eak@doctorsnews.co.kr
  • 승인 2011.02.1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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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희 국제회의통역사(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대부분의 의사들이 '제약회사 직원'하면 으레 영업사원과 마케팅 담당자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하나의 약이 세상에 나와 환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이 관여한다.

<의협신문>은 2011년 새해를 맞아 제약업계의 숨어있는 조력자들을 찾아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해 들어본다.

대한민국 의사라면 한번쯤은 이유희 국제회의통역사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기억이 안난다고? 아나운서 뺨치는 목소리를 들으면 '아하, 이 사람!'할 지도 모르겠다.

▲ ⓒ의협신문 김선경
이유희 국제회의통역사는 10년째 의학 관련 심포지엄이나 각종 학회,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의 귀와 입이 되어준 베테랑 통역사다. 의학 외에도 정치·경제·환경·IT·화장품 등 지난 20년간 다양한 분야의 통역을 맡아 왔고, APEC정상회의·ASEM회의 등 굵직한 국제회의에서도 활약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10년쯤 통역을 했으면 반의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 넌지시 물었더니, 단박에 손사래를 친다.

"다른 분야는 제법 여유가 생겼는데, 아직도 의학 분야는 의뢰가 들어오면 긴장부터 됩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랄까요? 토씨하나 놓치지 않으려면 '찰칵'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까지 귀에 거슬리니까요. 의사들도 각자 전문과가 있는데, 의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안 하는 분야 없이 맡는다는 게 쉽지 않죠.

사실 동시통역의 경우 통역 파트너를 찾기도 어렵습니다. 모두들 안 하려고 해요. 사전 준비도 많이 해야 하는 데다, 잘해야 본전이거든요."

통역이 외국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외국어로 단순히 옮기는 일이라고 여겨선 곤란하다. 의학 분야는 특히 그렇다. 'OO병에 대한 최신지견'이란 주제의 심포지엄이라고 하면, 일단 'OO병'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행여나 질의 응답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라도 하면 식은땀을 흘리기 일쑤다.

"연자들의 발표 스타일이나 발음은 둘째 문제에요. 일단 주제가 정해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사전에 그 질환이 뭔지, 치료법과 부작용, 국내 유병률, 최근 이슈, 예상질문과 답변 등을 모두 파악해야 하죠.

전문가들이 즐겨쓰는 표현에서부터 p-값이니 하는 통계 용어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vital sign'의 경우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기 보다는 '바이탈'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죠. 언어와 무관하게 이런 부분이 어렵습니다."

통역의 세계는 냉정하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끊임없이 평가를 받아야 하고, 결정적 실수를 하게 되면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나 일이 줄게 마련이다. 이때문에 그는 틈틈히 의학 기사나 의학 드라마를 모니터링하고, 병원에 비치된 의학정보 브로셔와 건강강좌도 꼼꼼하게 챙기며 평소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필요할 땐 친구 남편까지 동원한다. 2년전부터는 의학 분야 통역에 필요한 용어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딱히 다른 분야보다 보수나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닌 의학 분야에 이토록 열과 성을 쏟는 이유는 뭘까.

"어렵긴해도 의학 분야가 제일 재밌어요. A는 A고, B는 B라는 식으로 접근 방식이 과학적이고 결론이 명쾌하거든요. 매순간 시험을 치르는 기분으로 임하긴 하지만, 의학 분야와 다른 분야의 의뢰가 동시에 들어오는 경우 의학을 선택합니다.

가끔 끝나고 나서 의사 선생님들이 어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냐고 물어보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그날 통역이 매끄럽게 진행됐다는 뜻인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음, 10년만 젊었어도 의대를 다시 가지 않았을까요?"

그는 의학 통역의 역할과 범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순수학술회의의 경우 의사들이 직접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통역의 도움을 받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사례들이 늘고 언론에서도 해외연자의 발표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

최근에는 해외환자 유치 등으로 통역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의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통역사들이 접근하기가 힘듭니다. 통역에 대한 불신이나 비판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좀더 믿음과 여유를 갖고 용어 등을 문의했을 때 기꺼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몇 년 지켜봐주면 훌륭한 통역사들이 많이 배출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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