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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수여식에서의 감동

박사학위수여식에서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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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0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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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귀(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지난해 6월 23일 서울행 비행기는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에 구름길을 내며 날고 있었다.

작은 아들의 박사학위수여식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갈때는 빨리 학위수여식에 참석하여 아들의 손을 잡고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해주고 싶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대학에 몸을 담았던 나로서는 미국 대학에서는 박사학위수여식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가면서 처음 탑승시의 소란함이 스러지고, 비행기 운항소리마저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 조용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좁고 불편한 좌석에 앉아 나름대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잠든 사람, TV를 보고 있는 사람, 좌석등을 켜놓고 책을 읽는 사람….

내 좌석 옆자리에는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청년이 앉았다. 그는 앉아마자 게임기를 꺼내서 들여다보며 혼자 웃다가 혀를 차다가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사는지 한국에서 사는지 아직 알 수 없는 그 청년은 고개를 내 어께 쪽으로 떨구고 잠이 들어 있었다.

청년의 고개를 바로 세워주며 불쑥 내 아들보다는 훨씬 어린, 아니 젊은 이 청년은 과연 어떤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 젊은 날의 꿈! 말만 들어도 왠지 가슴에서 덥썩 받아주는 진한 감동이 스민 단어이다. 지금은 흐르는 세월과 함께 무디어져 버린 이름이지만 젊은 날의 나에게도 내일을 바라보며 꾼 꿈이 있었지.

고희를 지난 나는 지금 그 꿈을 이루었는지, 그렇지 못한 것이지 자문자답 해본다. 어쩌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는 것이 정답일 게다.

저 청년처럼 젊은 시절 내가 가졌던 꿈은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저 아프리카 같은 곳에 가서 의술을 펴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아니면 극심한 노동에도 벗어날 수 없던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 땅의 농부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그야말로 인술을 펼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궁벽한 시골 학생으로서는 쉽지 않았을 그런 꿈을 꾸고, 의학에 입문하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정년을 맞았고, 이제 내 생애를 정리해야 할 때에 이르렀지 않은가.

사람들은 자신이 꾸었다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여느 부모처럼 내 꿈이 덜 여문 자리를 자식들이 익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것을 자식들에게 요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큰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사명감을 느꼈는지 내 뒤를 이어 의사가 되었고, 지금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내분비 클리닉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작은 아들 역시 의학계통에 몸을 담고 있다. 그 애는 지금 미국 Illinois의 시카고에 있는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 미생물학교실에서 '뇌세포병변에 virus의 역할을 면역학적으로 접근'하는 기초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겨울 그의 학위논문이 통과되어 이학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하였다.

처음 참석하는 외국 대학의 학위수여식에 내 아들이 학위를 받게 됨에 내 마음은 기쁨과 호기심으로 넘치고 있었다.

학위수여식은 Northwestern university CAHN Auditorium에서 거행되었다. 이 대학은 1851년에 설립되였으니까 160년의 전통을 가진 행사답게 초청받은 학부모가 입장한후 예정시간인 12시에 정확히 시작되었다.

학위를 받을 학생들은 우리나라처럼 학위복을 모두 갖춰 입지 않고 졸업가운만 입은 채 입장하였다. 그 학생들의 머리위로 쏟아지는 박수, 박수소리. 그 속에는 내 박수소리도 함께 어우러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아 앉았고, 앞쪽 연단에는 지도교수가 앉아 있었다.

식이 시작되고 참관하는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학생의 이름을 부르고 논문 제목을 읽으면 그 학생과 학생의 지도교수가 연단 중앙으로 나온다. 연단 중앙으로 나온 학생이 절반 쯤 무릎을 구부리면 지도교수(adviser)가 학생의 목에 hood를 걸어준 후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힘찬 포옹을 하는 것이었다.

차례가 되어 내 아들의 이름도 불려지고, 아들과 담당교수가 포옹을 할 때 나는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 아! 사제 간의 유대를 이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진하게 표현할 수가 있구나!

이 감격스런 장면에 흠뿍 잠겼다가 고개를 드니 천천히 연단을 내려오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대학총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축하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학위수여식이 끝난 후 학생들은 머리에 박사모를 쓰고 그 동안 그들의 뒷바라지에 힘쓴 부모님께 함께 절을 하였다.

이 또한 졸업식에 부모가 함께하는 의의가 있지 않는가. 미국의 학위수여식은 학교와 학생과 지도교수와 학부모가 함께 벌이는 잔치였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 같다.

문득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생각났다. 옛 선인들의 말씀이다.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모두 똑 같이 내가 모셔야 할 분이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사제관계는 어떠한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졸업식, 또는 학위수여식에서 내가 가르친 학생들을 학위를 주고 졸업시킬 때 나는 어떤 마음이었던가. 그때마다 항상 내가 느껴왔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탈감이 이곳에는 없는 듯했다. 오로지 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만이 내 가슴과 눈으로 들어 올뿐이었으니까.

다른 학생 순서가 되어 학위를 주고받는 동안 우리나라 대학에서 하는 졸업식 광경을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졸업식 때 총장이 학위증을 수여하고, 대학원장이 사각모의 정수리에 얹어 두었던 수실을 내려준다.

그 동안 고락을 함께한 지도교수는 연단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 기어 찾으려면 객석에서나 찾을 수 있으려나. 40여 년 전 내가 전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나, 약 10년 전 큰 아들이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나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지도교수와 학부모가 행사의 전면에 있지 못하고, 객석만 지키는 졸업식. 학위를 받는 학생에게 음으로 양으로 버팀목이 되어 준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하는 물음에는 쉽게 나올 수 있는 답인데…. 그런 버팀목들을 제외한 졸업식은 들보 없는 지붕과 같지 않을까?

내가 나의 꿈을 위하여 걸었던 길에 내 배와 주머니, 그리고 가슴을 채워준 사람들, 특히 이미 저세상에서 손자들의 박사학위 수여식을 지켜보셨을 부모님께 다시금 감사는 마음이다. 그리고 모든 부모의 바람처럼 내가 바라는 자식에 대한 꿈을 채워준 나의 두 아들에게도 감사한다.

아들들아 아무쪼록 너희들 몸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거라. 나도 남은 생애 보람있게 살도록 노력할게. 삼부자(三父子) 박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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