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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이공계만 들쑤셔 놓고 실패로 끝난 의전원 실험

coverstory 이공계만 들쑤셔 놓고 실패로 끝난 의전원 실험

  • 이현식 기자 harriso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7.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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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원 부작용 '6년제 약대로' 고스란히 넘어가

▲ 서울의대는 의대·의전원 병행체제를 끝내고 2015년부터 의대학제로 돌아간다. ⓒ의협신문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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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원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의학 교육의 전반적 체계에는 별다른 성과를 낳지 못한 채 이공계 교수와 학생들의 속만 뒤집어 놓았다.

의전원이 이공계에 불러온 부작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약대 6년제가 시행되면서 이공계 학생들이 이번엔 약대로 쏠리고 있다. 올해 첫 시행되는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에는 1만명이 넘는 응시자가 몰렸다.

의전원 논의는 멀게는 1994년 2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의 발족에서부터 시작됐다. 2001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에 의학전문대학원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화했다. 그러나 2005년 첫 신입생을 뽑은 지 5년만에 정책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의전원 실패는 사실 예상된 것이었다. 다만 눈을 감고 밀어붙였을 뿐이다. 2001년 8월 의전원추진위원회가 펴낸 '의학전문대학원 시행연구'를 보면 당시 이공계 교육 파행이 우려된다는 점을 주요 검토항목으로 포함하고 있다.

즉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하에서 의학 교육에 입문하기 위한 '의학교육희망증후군(premedical syndrome)'이 일반 학부, 특히 자연계 대학 학생들에게 나타날 우려는 없는가'라며 예상되는 부작용의 이름까지 붙여놨다.

이 보고서는 또 "41개 의과대학 모두가 최종적으로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의전원은 의학교육계의 강한 반발 때문에 법학전문대학원과 달리 형식적으로는 법적 강제 없이 자율적·점진적 전환방식을 선택했고,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교과부의 기본방침은 41개 전체 의사양성기관을 의전원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초기에 이상적인 형태로 구상된 의전원은 시행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왜곡됐다. 의전원추진위원장을 맡아 국내 의전원 제도를 사실상 만들어낸 허갑범 연세대 명예교수조차 모든 의대의 의전원화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올해 4월 7일 교과부 주최 공청회에서 "6년제 의과대학이라도 운영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의전원으로 모두 전환해야 하는 게 아니라 3분의 1이나 4분의 1만 가고, 대신 전환한 의전원에 대해선 커리큘럼을 적절하게 바꾸고 국가와 대학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전원 비율은 전체 의사 양성의 25~33%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의전원 실험 실패를 놓고 잘못된 정책을 시행한 데 대해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미 병행대학이나 의전원을 졸업한 의사들 사이에서는 교육정책의 시행 착오로 더 이상 후배도 없이 고립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달 전쯤 기자는 고3 아이를 둔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의사 양성 학제를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려는 정부 정책에 제동이 걸리자 이를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즉 자신의 아이를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시켰다가 의전원으로 보낼 생각인데, 의전원이 줄어들면 경과기간을 두더라도 현재 대학 1학년까지만 의전원 시험 응시기회를 줄 것이므로 현재 고3인 학생들은 의전원 선택권도 없고 의대 입학정원이 늘지도 않아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이 학부모의 예상은 상당 부분 적중했다. 1일 발표된 교육과학기술부의 '의·치의학 교육제도 개선계획'에 따르면 의대·의전원 병행대학의 경우 현재 대학 1학년 학생이 의전원에 입학하는 2014학년도까지 현 체제를 유지한 후 2015학년도부터 학제 전환이 가능하고, 완전 의전원으로 전환한 대학은 현재 고2 학생이 의전원에 입학하는 2016학년도까지 현 체제를 유지한 뒤 2017학년도부터 의대로 전환할 수 있다.

반면 의대 입학정원은 빨라야 2013년부터 늘어난다. 병행대학이나 의전원이 의대로 전환할 경우 학제 전환 2년 전부터 미리 의예과 학생을 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에 적용해 보면 현 고3 학생은 대학입시에서 의대 입학정원의 늘어나는 혜택은 누리지 못하고, 대부분 의대로 복귀할 예정인 병행대학에는 진학할 수 없게 된다.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했다가 의전원에 입학하려는 2015년에는 현재 완전 의전원으로 전환한 대학에만 진학 기회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의전원이 점점 많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대폭 기회가 줄어든 셈이다.

그렇다면 이 학생에게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했다가 의전원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부여해야 할까.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걸 '권리'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이공계 교육을 단지 의전원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 과정으로 폄하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공계 교수 출신 박영아 의원 맹활약

교과부가 의전원 체제를 고수하던 종래입장을 변경한 배경에는 물리학과 교수 출신인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교육 현장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박 의원은 2009년 9월과 2010년 3월 차례로 토론회를 열어 의전원 체제의 문제점과 이공계 교육의 황폐화 현상을 지적했다.

그는 이번 교과부의 학제 자율안이 나온 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를 수정한 교과부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좋은 의사양성이란 목표는 의전원과 의대라는 학제의 차이로 달라질 수 없으므로 학제가 다르다고 해서 정부 지원이 차별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전원 강제한 건 법 아닌 돈

다양한 학문 배경을 가진 학생 선발, 의학계에 몰리는 우수인력 분산 효과, 기초의학자 배출 증가…. 당초 기대됐던 의전원의 장점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의대 입시과열은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옮겨갔고, 기초의학 외면 현상도 그대로였다.

대학들이 의전원 체제가 마뜩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의전원으로 전환하거나 병행체제를 선택한 중요한 이유는 BK21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교육당국이 의전원 체제를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재정 지원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당초 BK21은 일반대학원의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의료계에서는 의전원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수단으로 변질됐다. 의전원에서 다시 의대로 복귀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동안 제공한 BK21 지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의학계 내부에서는 앞으로 의전원으로 남을 대학이 6~8곳 정도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당연히 의전원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던 가천의대와 경희대마저 의대 복귀를 놓고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수는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41개 의대·의전원 가운데 의전원으로 남을 곳은 건국의전원 한 곳만 확실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의전원 실험은 끝났다. 당분간 의학교육제도는 다수의 의대와 소수의 의전원이 공존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현재 의대를 졸업하면 학사, 의전원은 석사 학위를 부여하는 만큼 앞으로는 이를 통일하기 위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2009년 12월 21일자 1면에 '의대·의전원 병행 없애고 대학자율에 맡겨라'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바람직한 학제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교과부는 1일 병행체제를 폐지하고 학제 선택을 각 대학에 맡기는 방안을 확정했다.

의협신문은 또 언론사 최초로 교과부가 의대·의전원 및 이공계 교수와 학생 1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단독 입수해 2010년 1월 11일자 1면 '의전원 교과부 1만명 설문조사 전격해부' 커버스토리로 보도함으로써 의학교육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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