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대용교수
[인터뷰]한대용교수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0.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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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관절하면 한 교수 연상,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제일 연륜 높아 왕교수 호칭

“지금 이순간까지도 정년퇴임이란 말이 실감나지 않습니다.하지만 여기저기서 소감을 물어오는 것을 보면 세월을 거역하지 못하고 정녕 떠나야 하나 봅니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습니다. 돌이켜 보니 임상적으로는 그런대로 열심히 뛰어 성과를 얻었으나 기초연구와 동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 세대의 척박한 환경 탓으로 돌리고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 놓아야죠.”

2월말로 정년을 맞은 연세의대 한대용(韓大用·정형외과학)교수는 국내 인공관절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늘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낮추어 후배들로 부터 존경을 받고 있어 그가 떠난 자리는 더욱 공허해 보일 것 같다.

1935년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태어난 한교수는 38선이 갈리면서 부모와 함께 월남했다. 한교수가 의사의 길을 자신의 업으로 삼은 데는 특별한 동기라기 보다는 본인의 설명대로 “54년 대학을 들어갈 때 만해도 다른 전문직업이 별로 없던 터”라 의과대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가 정형외과학에 천착하게 된 것은 그의 부친의 영향이 컸다. 한교수의 재학시절 부친이 교통사고로 대퇴골 골절을 입었고 견인요법 외에 별다른 치료법도 없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무릎이 다 굳는 것을 목격한 한교수는 정형외과학을 자신의 천직으로 삼게 됐다.

한교수하면 곧바로 인공관절과 일치시킬 정도로 이 분야의 일인자가 된 것은 77년 프랑스 파리 제5대학부속병원에서의 연수가 밑거름이 됐다. 파리 5대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응급의학의료체계로 이름을 날리는 대학으로 응급의학과 외상을 공부하러 갔다 인공관절 쪽에 매달리게 된 것. 그때와 비교해 인공고관절의 국내 현황을 임상적으로 잘 따라왔다고 평가한 한교수는 환자들이 치료가 잘 돼 기뻐할 때 보람을 느끼지만 대부분 미국 제품인 삽입물이 비싸 외화가 유출된다고 생각하면 한편에서는 씁쓸한 기분도 든단다. 이 분야의 국산화를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과 연구가 따라야 하는데 근자에 조금씩 국산화 움직임이 일고 있어 기대를 걸고있다.

한교수가 정형외과 전문의자격을 딸 때 만해도 함께 시험을 본 사람이 16명에 불과했으나 현재 전문의 3천2백명에 전공의 9백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교수가 정형외과를 시작할 때는 부전공이 따로 없어 전분야를 다 해야 했단다.“당시만 해도 결핵, 골수염, 관절염이 많았고 외상도 상당히 많아 한 사람이 만능으로 여러 질환을 다루어야 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부전공이 대두되면서 골절분야에서 치료가 어렵다는 비구골절에 대한 연수를 마치고 정형외과학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수술이라는 이 분야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했고 많은 수술례를 축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울의 여러 대학과 전국의 정형외과 지회를 다니며 강연과 수술을 도운 일은 보람있었으며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교수는 서울 시립중부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1년여 재직하다 1971년부터 모교인 연세의대에 몸담으면서 줄곧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봉직했으며, 1993년 영동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파견됐다.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왕교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존경받아온 한교수는 영동세브란스병원이 1983년 개원한 이래 첫번째 정년퇴임을 맞았는데 이런 이유로 병원 교직원들의 아쉬움은 각별하다. 한교수는 정작 왕교수란 별명 때문에 행동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귀띔한다.

“왕교수란 별명은 몇년전 영동세브란스병원장이던 한동관교수가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붙여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왕교수란 별명 때문에 함부로 못하는 행동의 제약도 있었으나 선배로서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또 시간을 지키는 등 모범을 보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세계아마추어권투연맹 의무위원, 대한스포츠의학회 회장으로 불모지인 국내 스포츠의학도 개척해왔다. 골절학회 회장, 슬관절학회 회장, 정형외과학회 이사장 및 회장을 두루 역임했다.

3월1일부터는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일산병원에서 계속 환자를 치료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학교 선후배의 도움”이라고 겸손해 하는 한교수는 “환자를 위해 더 봉사하라는 천명으로 알고 더욱 분발하여 힘이 다 할 때까지 환자진료에 모든 힘을 바칠 각오”라고 말한다.

한교수는 `참의사상'에 대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환자를 자기 부모형제처럼 생각하여 최상의 치료를 시행하고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고 경제적인 이익은 그 부수적인 산물로 생각하는 의사”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요즈음 급격한 의료환경의 변화로 의사들이 아우성 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과거에는 환자를 열심히 보면 저절로 생활안정이 따라왔으나 열심히 봐도 힘든 상황이라며 의사의 생활수준이 안정돼야 환자에게 적정한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정부과 국민들이 십분 이해해 주기를 바랬다.

2녀1남의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한교수는 아들이 현재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펠로우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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