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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의대·의전원 병행 없애고 대학자율에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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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9.12.1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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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제도개선위 논의 '데자뷔'...2005년 이전과 달라진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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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소재 유명 의학전문대학원 입시학원에서 한 수험생이 게시판에 붙은 2010년 대학별 모집요강을 보고 있다. 김선경기자 photo@kma.org
교육 당국이 산하 위원회를 통해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등 향후 의사 양성체제에 대한 논의를 올해 안에 마무리 짓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최소한의 윤곽조차 잡히지 않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제각각 의견은 많지만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는데다가 의전원이 도입된 지난 2005년 이전의 의전원 찬반 대립이 되풀이되는 양상이어서 데자뷔(기시감)라는 회의감마저 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전문가 19명(위원 16명·자문위원 3명)으로 의·치의학교육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의사 양성체제에 대한 의견을 받아 2010년에 최종 정책을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제도개선위는 이달 29일 단 한 번의 회의만 남겨놓고 있는데도 이렇다할 결론을 못내고 있다.

교과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일각에서는 5~10년 결정을 연기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 12개의 의대·의전원 병행대학에서는 같은 강의실에서 같은 내용의 수업을 받는데도 다른 등록금을 내고 다른 학위를 받는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현상유지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계에서는 의대냐 의전원이냐에 대해선 이론이 있지만 적어도 한 대학 안에서 두 가지 제도를 병행하는 것은 하루 속히 철폐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의학교육계에서는 당초 교과부가 내년 2월까지 최종 정책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교과부는 내년 말까지만 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에 급할 것 없다는 반응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내년 정확히 몇월까지 결정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며 "제도개선위로부터 올해 안에 의견을 받아서 내년 안에, 그러니까 12월 31일까지만 정책을 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교과부의 시간 끌기 전략이 아니냐는 해석이 우세하다.

교과부는 올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09년 중점 추진과제'로 대학의 교육역량을 강화한다는 명분 하에 법률·경영분야와 함께 의·치의학 분야의 전문지식서비스 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대학원 체제를 본격 가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 3월 25개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한 것과 맞물려 전문대학원 체제를 굳히려는 교과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이하 학장협회)는 8일 임시총회를 열고 의대든 의전원이든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이후 임정기 학장협회 이사장(서울의대 학장)은 교과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이같은 의학교육계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학장협회의 자율성 요구는 교과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교과부 관계자는 "주요 이해당사자의 의견인 만큼 논의는 할 것"이라면서도 "어느 한 단체가 요구한다고 해서 그렇게 결정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교과부는 의전원으로 완전 전환과 의대로 복귀 등을 놓고 지난달 의대·의전원·이공계 교수와 학생 1만여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문조사를 실시했지만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 참고사항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이 설문조사에서는 의전원 전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공개가 안 되고 있다.

1만명 설문조사가 안 중요하다?

교과부 제도개선위가 실시한 설문조사는 향후 의사 양성체제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질문을 많이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의대·의전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지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의대·의전원에 진학할 때까지 소요된 사설 교육기관 수강료 및 경비 ▲장래 희망 전공과목이 기초의학인지 임상의학인지(내과·외과 등 구체적 전문과목도 선택) ▲의전원 학생의 학부 전공 계열 등을 묻고 있다.

또한 각 의대 및 의전원을 대상으로 ▲의전원 제도가 도입된 이후 교육과정의 변화 정도 ▲병행체제 대학의 경우 2006~2009년 의대 및 의전원 학생의 학년별 평균 점수 및 비교를 질의했다.

특히 제도개선위는 대학 교수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병행체제 학교의 경우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관련해 의대 학생과 의전원 학생 중 어느 쪽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하는지 ▲의전원 제도가 성숙한 의료인 양성·의학교육의 발전·고등교육 정상화·입시과열 해소 효과 등 각 항목에 대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처럼 향후 의사 양성체제를 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공개하고 충분히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데도 교과부와 제도개선위가 비공개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과부가 비공개로 해달라고 한 게 아니라 제도개선위원들 사이에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할 것이냐를 놓고 이견이 있어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다양성? 합격자 65.9% 생물·화학

의전원 체제가 도입되면서 대학의 학부 교육이 의전원 입시를 위한 전초기지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드러났다. 교과부의 '2005~2007년 의전원 합격자 출신학과 현황'에 따르면 생물·화학 관련 학과 출신이 전체 합격자 가운데 65.9%를 차지했다.

생물이나 화학 분야가 의학의 기초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같은 특정 전공자 편중 현상은 다양한 전공자를 선발해 의학도로 양성한다는 의전원 도입의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서울대에서 올해 6월 발간된 '전문대학원 체제로의 전환 등이 학부 교육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방안 연구(연구책임자 양승목 언론정보학과 교수)'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매우 의미있는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2003년 이후 서울대 학과별 신입생 입학점수 추이를 살펴본 결과 공대 화학생물공학부 입학생의 수능평균은 공대 내에서 2003년 5위, 2004년 4위를 기록하다가 2005년에는 2위에 오른 뒤 2009년에는 공대 입학생 가운데 수능평균이 가장 높은 학과가 됐다.

농생대 응용생물화학부의 모집단위인 농생명공학계열의 경우도 계열모집을 시작한 2005년부터 계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의전원 입학에 유리한 학과의 입학 경쟁률도 뛰고 있다. 2008년 대입 수시 2학기 원서접수 결과 연세대 화공생명공학부 교과 성적 우수전형의 경쟁률은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한 34대 1을 기록했고, 건국대 화학생물공학부는 52대 1로 2007년의 16대 1에 비해 역시 3배 이상 뛰었다.

고려대도 생명과학부가 41대 1, 생명공학부 43대 1, 화학과 46대 1, 화공생명공학과가 57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입시기관인 PMS에 따르면 올해 의전원 합격자 1023명, 치전원 합격자 363명 등 1386명(총합격자 2221명의 62%)을 조사한 결과 생물학 전공자가 43.4%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공학계열 19%, 화학 13.1% 등의 순이었다.

의전원 진학에 필요한 과목의 수강인원도 부쩍 늘었다. 의전원이 도입된 2005년을 기준으로 서울대의 생물학 수강인원은 이전 연도에 비해 약 20%, 화학 수강생은 무려 10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승목 교수는 "최근 6년간 생물학이나 화학 관련학과의 상대적 정원이 일정했음을 감안하면 2005년을 기점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한 수치는 타 전공학생의 해당 과목 이수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전문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둔 학생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생명과학부 학생 43.1% "의전원 갈래요"

서울대는 올해 4월 서울대 학부 재학생 1142명을 대상으로 의·치전원 진학희망 현황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의·치전원 진학 희망자는 자연대 생명과학부 재학생이 43.1%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농생대 응용생물화학부 27.8%, 자연대 기타학과 18.5%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연대 생명과학부 학생들의 경우 입학 당시 의·치전원 진학 희망자는 33.1%였으나 현재 진학 희망자는 43.1%로 10%포인트나 증가했다. 구체적인 학년별 수치<그림>를 보면 2학년의 경우 56.8%, 3학년은 51.2%가 의·치전원 진학을 희망하고 있었다.

양승목 교수는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첫째는 생명과학부 학생이 대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전문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문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입학하는 신입생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전문대학원이 다양한 전공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탄생하기 위한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일 뿐 그 자체가 특정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은 아니다"며 "학부과정에 법대가 없는 미국의 로스쿨 제도에서도 학부전공을 바탕으로 특정분야의 전문법조인이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다"고 밝혔다.

수험생·학부모 좌불안석…결정 미뤄선 안 돼

학장협회는 최근 대안으로 고교 졸업생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뒤 석사학위를 받는 '6년제 학석사 통합과정'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교과부가 학사편입 비율을 50% 이상 요구하면 현 의전원과 변할 게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아직 학제 모형에 대해서도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그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결정된 게 없다"고만 말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생각할 부분은 의전원 체제가 지속되면서 의전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의사 양성체제가 변화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민원이 늘고 있다고 교과부 관계자는 전했다.

의대나 의전원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의사 양성체제에 대한 결정은 시간을 끌기 보다는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해 명확한 입시전형을 발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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