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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의 가방

퇴근길의 가방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0.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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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원한(순천향의대 교수,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외과)

특별히 외부 모임이 없는 날이면 저녁 식사를 병원 식당에서 하고 교수실에서 이것저것을 하다가 보통 저녁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집으로 퇴근을 한다.

퇴근을 준비하면서 가방에 하던 일거리를 주섬주섬 챙겨 넣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십중팔구 이것들을 하나도 못하고 내일 그냥 이 가방을 그대로 들고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중에 중요한 몇 가지를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다짐을 하면서 일거리를 가방에 챙긴다.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퇴근하는 발길은 가볍지는 않지만 집에서 못다 한 일을 하리라는 각오로 마음은 든든하다.

병원과는 걸어서 10분 거리인 집에 와서 씻고 소파에 앉아서 과일을 먹으면서 9시 뉴스를 보다보면 저녁 10시경이 된다. 아내가 편하게 TV를 보라고 소파에 깔아준 베개와 요에 누워서 리모콘으로 TV 프로를 탐색하다가 좋아하는 프로를 찾게 되면 곧장 TV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어쩌다가는 TV 드라마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어느덧 자정이 되어버린다. 병원에서 가져온 가방을 열어 볼 여유는 전혀 없다. 내일 아침 6시전에는 일어나야 하기에 잠을 자야한다. 결국 어제 저녁에 들고 온 가방을 그대로 아침 출근길에 다시 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오늘은 절대로 가방을 들고 퇴근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다짐을 해보지만 그날도 다시 가방을 챙겨 들고 퇴근을 한다.
열어보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30여년간을 가방에 일거리를 넣고 퇴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일거리를 가까이에 두면서 느끼는 안도감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방이 주는 무게에 반비례하여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인가?

오랜 세월동안 옆에서 이런 나의 모습을 딱하게 지켜보던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가방을 현관 마루 쪽, 눈에 잘 띄게 놓아둔다. 혹시 다음날 아침에 잊고 갈까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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