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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의 전쟁(1)

시간과의 전쟁(1)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0.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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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아(인천기독병원 정신과)

필자가 전공하는 과의 특성 상 환자나 보호자와 마주보며 대화하는 시간이 많다. 때문에 외모 관리에 소홀할 수가 없는데, 색조화장은 꺼려도 기초화장에 공을 들이고, 네일·모발·피부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곳에서 다듬기도 하니 평소 예약이 일상화되어 있다.

다행히 관리를 받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부분 정해져 있고, 제 시각에 시작하므로 예약시각에 도착해 기다리는 경우는 드물다.

이와는 달리 정신과 진료에 필요한 시간에 대한 예측은 종종 어긋나기 마련이다. 외래에서 금방 혈당과 혈압을 측정하거나 대부분 검사를 진료 전에 시행한 후 여러 검사결과를 보고 처방을 내리는 분야와는 다르다.

정신과에서는 10분 이상이 소요되는 선별검사나 설문검사를 진료 중에 실시하기도 하며, 증상을 평가하고 약물 효과, 부작용 여부에 대해 파악하려면 대화가 필수적이다. 정신과에서도 여러 검사를 하지만, 검사결과 설명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임상심리검사까지 있으니 진료시간은 더 길어지게 된다.

게다가 몇 개월 심지어는 수 년 동안 수진을 중단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복지 혜택을 위한 진단서, 예를 들면 장애진단서 같은 중요한 서류를 당일로 발급해 달라고 한다.

더 나아가 내일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생계가 곤란하다는 식으로 하소연을 하며 측은지심을 유발한다. 또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악화된 상태로 내원해서 몇 개월 전 유지요법 때 쓰던 약을 똑같이 처방해달라고 막무가내 떼를 쓰니 난감할 뿐이다.

이런 경우 기존에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라고 해도 그동안의 경과, 현상태 등을 파악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고, 의료진이 교체되어 처음 진료하는 환자라면 소요시간이 초진보다 더 길어진다.

어떤 환자나 가족은 여러 차례 입원도 했고, 바로 얼마 전까지 다니던 병원이니 기록이 다 보관되어 있지 않느냐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30대에도 전문의고시 공부를 하느라 두꺼운 영문 교과서와 씨름하고, 해마다 필수 연수교육을 받으며 평생토록 공부해야 하는 의사들에게도 그 많은 기록을 순식간에 읽고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환자를 동반하지 않고 보호자만 오는 경우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환자가 내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보행이 거의 불가능한 노령의 치매 환자, 병식이 없고 심각한 정도의 입원공포증 증상을 가진 환자, 행동조절이 어려운 중증 복합장애 환자 등 한 번 병원에 온다는 것이 가족에게 커다란 부담이 되는 경우, 이와 대조적으로 경과가 양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유지요법 기간에 학업생활, 직업 활동, 타 지역 또는 외국 체류 중이어서 환자 본인의 직접 내원이 일상활동에 지장을 주는 경우 등이다.

환자가 혼자 내원한 재진의 경우라고 해도 항상 비슷한 시간에 진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괜찮다가 증상을 호소해서 시간을 갖고 스트레스 평가를 하면 부모님 병환, 자녀들 문제, 대인 갈등, 재정난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고, 특히 환자 자신의 건강문제 또는 배우자의 불륜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병도 있는 것은 아닌지 이리저리 고심하게 되니 말 그대로 시간(時間)과의 전쟁(戰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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