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꾸리 안먹어?
엄마 미꾸리 안먹어?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09.08.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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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수 지음/진애드 펴냄/1만 2000원

한세기 100년을 꼭 채워 지나온 한 어머니가 있다. 다섯 남매를 세상 속 그들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루게 한 어머니가 있다.

전란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아내로, 어머니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꺾이지 않은 의지로 굴곡진 시대를 헤쳐온 어머니가 있다. 평생 다른 이를 긍휼히 여겨 베품과 나눔의 삶을 잊지 않은 어머니가 있다.

오늘 그 어머니를 추억한다.

'쉰둥이' 한광수 전 서울시의사회장(서울 마포·용현의원)이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을 되짚어 <엄마, 미꾸리 안먹어?>를 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000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가슴 한 켠에 묻어놨던 이야기들을 소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또 현대사에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대를 지나오면서 힘들고 고된 삶이 이어지더라도 꺾이지 않았던 그 분의 의지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셨던 그 분의 뜻을 되뇌인다.

아버지 쉰둘, 어머니 마흔하나에 태어난 저자는 어릴적 '늦된' 아이였다. 어눌한 어조에 말도 늦게 틔였고, 직장이 항문 밖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이 좋아 일부러 힘주어 밑을 빠지게 하던 아이였다. 학교갈 때면 으레 가방을 놓고 가기 일쑤였고 대화상대는 고작 어머니, 아버지가 전부였다.

게다가 입맛도 까다로와서 고기와 기름은 전혀 먹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미꾸라지를 고아낸 후 남은 찌거기만은 맛있게 먹었다. 늦된 쉰둥이 저자와 어머니의 추억은 "엄마, 미꾸리 안먹어?"로부터 시작된다.

모두 여섯개 단락으로 꾸며진 이 책의 들머리에는 '4남 1녀의 어머니'로서의 삶이 그려진다.

구공탄 뚜껑에 데인 저자의 손을 붙잡고 자책하며 눈물 보이시던 모습과 취학전 어머니를 따라 여탕을 들어갔던 이야기, 외식을 싫어하시던 아버지 영향으로 한달에도 몇번씩 볼 수 있었던 어머니의 신선로와 잊지못할 맛을 풀어놓는다.

두번째로 '전쟁과 가난 속에서 가정을 지킨 어머니'에서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부친은 설립하신 고아원과 양로원을 지키기 위해 고향에 남고 어머니가 솔가해서 개성-충남 성환-대구를 거치며 피난길에 올라 거친 세월 속에서 가족을 지켰던 일들이 펼져진다.

세번째 장 '개화기 신여성이면서도 예의범절을 중시한 어머니'와 네번째 장 '어머니 가르침의 본질'에서는 갖가지 고난 가운데서도 부친의 유업인 복지법인을 다시 일으키고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열정을 다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다른 이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전공인 수예로 자식들의 학비와 생활비까지 담당했던 고단한 삶 속에서 간직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또 원불교에 귀의한 후 재가교도로서 최고의 법호인 대호법(大護法)을 받기 까지의 종교인으로서의 삶도 녹아있다. 마지막으로 '백수를 누리신 어머니'와 '추모의 글'에서는 백수연 두달여만에 세상을 등지신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대한 추억과 소박하지만 강건하셨던 유언, 그리고 자제와 지인들의 회고가 이어진다.

1954년 겨울, 아버지 어머지와 5남매가 함께 한 유일한 가족사진으로 첫 장을 연 이 책은 단락마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빛바랜 사진으로 여백을 채우며 아련함을 더하고 있다. 저자와 50년을 넘게 이어온 인연인 지기 김종근 전 대한개원의협의회장과의 우정도 책 곳곳에서 곁을 내보인다.

저자의 어머니 혜타원(慧咤圓) 윤치덕 선생은 1900년에 태어나 개성 정화여자보통학교-한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를 거쳐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현 동경여자대학) 동양자수 고등과를 졸업한 후 대구 경북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북여고)에서 교편을 잡는다.

교직생활 중 당시 교장의 주선으로 개성 최초의 내과의사이던 한철호 선생과 결혼한 혜타원은 이후 다섯남매를 두게 된다. 한철호 선생은 1916년 의사가 된 후 20여년 후인 1937년 전 재산을 기부해 사회복지법인 '개성유린관'을 세우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운영했다.

평소의 지론인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이웃이 있다)'에 따른 삶이었다. 1966년 남편이 별세한 후 1971년부터 재단법인 개성유린관 이사장을 맡은 혜타원은 1988년 원불교에 개성유린관을 희사해 '유린보은동산'을 만들었다.

이 재단은 현재 전국 10곳에 시설을 갖추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기관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슬하에 둔 5남매 가운데 영수(재미 의사)·성수(재미·미시건대학 교수·2003년 작고)·남수(재미 의사)와 저자는 부친을 좇아 인술의 길을 이었으며, 고명딸인 막내 지현은 2008년 광운대 문과대학장을 끝으로 교수직을 정년퇴임했으며 영문학자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서랑이다.

이 책의 표지는 저자의 '부지런한 후배' 한미애 원장(서울 양천·한소아과의원)이 민화 '효제문자도'로 장식했다(☎02-716-5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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