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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과거 국회도 '환수법안' 격론…결국 '폐기'

coverstory 과거 국회도 '환수법안' 격론…결국 '폐기'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9.06.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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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회의록 입수…발의 의원 조차 "의료질 하락" 밝혀

Cover Story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법'(공식 법안명칭: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상임위원회 심의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찬반 논쟁도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의료계는 일개 장관의 고시에 불과한 건강보험급여기준이 의사의 진료권과 환자의 건강권보다 중요시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타협불가의 원칙으로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한정된 재원으로 운용되는 건강보험제도의 한계로 인해 약제비 통제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약제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으로 인해 발생한 약제비를 의사로부터 환수하는 입법 타당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부터 8년전, 16대 국회에서도 똑같은 사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아래 제16대 국회 회의록 발췌 관련기사 참조>

당시 새천년민주당 김성순 의원은 '부당이득의 징수'를 골자로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그 내용은 이번 18대 국회에서 민주당 박기춘의원이 제출한 법안과 차이가 없다<표>.

16대 국회에서는 김성순 의원의 법안을 놓고 어떤 의견들이 오갔을까?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폐기했을까? 본지가 입수한 당시 회의록은 이른바 '약제비 환수법안'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김성순 의원의 개정안이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된 날은 2001년 11월 26일. 이날 복지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김 의원으로부터 제안설명을 들었다.
▶회의록

김 의원은 의약분업 시행 이후 처방과 조제가 분리되면서 과잉약제비 회수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졌다며 이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보아도 일부 의료기관의 과잉처방으로 의약품 오·남용이 초래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방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입법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이같이 주장했던 김 의원도 환수법의 부작용을 심각히 우려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심평원 심사기준의 합리성에 대해 의료계나 약계와 다툼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심사평가는 의·약학적 타당성에 근거한 의료의 질 보장과 비용효과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자칫 비용효과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 국민건강 증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비용효과만 강조하면 의료 질 하락"

이는 정부의 요양급여기준이 주로 건강보험재정의 안정화를 위해 기능함으로써 최선의 진료를 가로막고 있다는 의료계의 입장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김 의원은 이어 "심사기준이 의료계나 약계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지 여부와 심평원이 자의적으로 심사기준을 해석해 적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요양급여기준과 심사기준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김 의원의 제안설명에 이어 토론에 들어가면서 찬반 논쟁이 시작됐다.

당시 무소속 김홍신 의원은 법안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보험재정손실의 책임이 과잉·허위 처방한 의료기관에도 있으므로 이러한 조치는 타당하다"고 말했다. 신한국당 손희정 의원도 "적절한 조치"라며 찬성의견을 냈다.

그러나 새천년민주당 고진부 의원은 "심사평가원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심사기준이 현대의학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잉처방을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약제비 환수를 명문화 하기 전에 심평원이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후 법안은 법안심사소위원회(당시 위원장 김태홍)에 회부돼 심의를 거쳐 통과됐다. 그러나 전체회의 의결을 앞두고 제동이 걸렸다.

2002년 4월 17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는 김성순 의원의 개정안을 처리안건으로 상정했다. 소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 처리되는 것이 국회의 관례. 그러나 이날 전체회의는 이례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법안소위로 다시 내려보냈다.

심재철 의원 16대 국회서도 '반대'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날 회의에서 심재철 의원이 환수법안의 부당성을 강하게 지적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당시 한나라당 초선의원이던 심 의원은 환수법안의 법리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부당이득이 성립하려면 법률상 원인이 없어야 할 것, 이익을 얻어야 할 것,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쳐야 할 것 등 세 가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며 "그러나 과잉처방은 의료행위라는 법률상 원인이 존재하고, 의사는 약을 처방하면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하므로 두 가지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특히 "의사의 처방이 정당한지 아닌지 여부는 아무리 싸워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요양급여기준이 갖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심 의원은 "이렇게 환수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하면 보건복지위원회가 굉장히 우스워질 염려가 크다"면서 "법사위에서 100% 스톱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법안 처리를 유보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법안은 소위원회로 재회부됐으며 이후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채 16대국회 회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현재 18대 국회의 약제비환수법안 처리 과정은 이같은 16대 국회 상황의 재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비슷하다. 우선 두 법안 모두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발의했다.

18대 국회에 제출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은 민주당 박기춘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둘째,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전체회의에서 의결되지 못했다. 18대 국회 박기춘 의원 법안 역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쳐 전체회의에 상정됐으나 심도깊은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소위원회로 재회부됐다.

심지어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의원 조차 똑같다. 심재철 의원은 16대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도 환수법안의 문제점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12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의사들은 규격화된 진료만 해야한다"며 "환자 치료에 필요하더라도 요양급여기준에 벗어나는 진료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난했다.

심 의원은 "이 법안을 통과시키면 국회가 결국 국민의 건강보다는 돈(건강보험재정)을 앞세우는 꼴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여기준 바꿔줬으니 법안 찬성해라?

보건복지가족부는 의약분업 직후인 16대 국회 상황과 현재를 단순 비교해 환수법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심평원의 전문성이 크게 향상됐고 요양급여기준도 많은 개선을 이뤘다는 것.

특히 환수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약제급여기준개선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의료계가 문제 제기한 110개 대상 가운데 61개 기준을 개선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의료계 요구대로 약제급여기준을 개선해주었으므로 이제는 법안 통과에 이의를 달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 공무원들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약제급여기준 개선이 의료계의 법안 합의의 전제조건'이라며 의원들을 설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입수한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정영기 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지난 4월 14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약제기준개선TF의 경과를 설명하며 "의사들의 진료경험까지 급여기준에 반영했다",

"특히 항생제 같은 경우에는 의사들의 의견을 거의 다 반영을 해서 개선했다"고 말했다. 박용현 건강보험정책관도 "이번 약제급여기준 개선으로 그동안 의협이나 병협에서 제기됐던 문제는 100% 다 해소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영학 복지부 차관은 법안소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개정안에 대해서 의협이나 관련단체에서 만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의료계는 이같은 복지부의 태도에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약제급여기준이 개선되면 법안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한 적도 없으며, 근본적으로 급여기준 개선과 환수법안 추진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의료계의 이같은 입장은 국회 속기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난 4월 23일 전철수 당시 의협 부회장은 법안소위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복지부가 태스크포스를 만들테니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길래 '기준 개선을 법 통과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고, 정부에서도 '그것은 아니다. (급여기준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이다'고 해서 흔쾌히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태스크포스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복지부가 3차 회의 때부터 급여기준개선과 환수법안을 연계시키려고 해서 의협측이 항의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바뀐 기준 살펴보니 절반 이상 '주사제'

태스크포스가 개선한 약제급여 기준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복지부가 개선했다는 급여기준 상당수가 원외처방 대상이 아닌 '주사제'인 것이다.

김미선 의협 보험국장은 "61개 품목 가운데 절반 이상이 주사제로서 입원환자에 해당되는 약제들"이라며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법에 대한 사전조치로 약제급여기준을 개선했다는 주장은 앞뒤가 안맞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복지부는 국회를 기만한 것이 된다. 원외처방을 하지 않는 주사제 급여기준을 바꾸어 놓고 "의협이 제기했던 문제가 100% 해소됐다"고 의원들에게 말하며 마치 정부와 의료계가 환수법안에 합의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지부의 이같은 설득작전은 복지위 소속 의원들에게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국회 속기록에서 발췌한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의 4월23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의 발언 내용이다.
 
"(중략) 그래서 TFT가 생긴 것의 기본은 이 법안 통과를 전제로 하고 생긴 것이라고 우리가 다 판단을 했거든요. (중략) 이번에 (복지부가 약제급여기준) 개선안을 가져오면서 사실은 '상당 부분 해소가 됐다'라고 (의원님들이) 판단들을 하고 있어요. (생략)"

"법안 통과되면 의사들은 지뢰밭 걷게 돼"

조남현 의협 정책이사는 "태스크포스를 통해 개선된 급여기준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남아있는 수 많은 기준을 태스크포스를 통해 고쳐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복지부의 TF 운영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조 이사는 또 "정부가 급여기준을 개선하겠다는 것 자체가 현행 급여기준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급여기준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복지부의 주장은 약제비 환수의 부당성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환수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는 것은 요양급여기준이 법률로서 기능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이는 의사들이 항상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진료를 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국회의 심판을 받은 바 있는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법안. 18대 국회의원들이 의료계의 격렬한 반발을 뒤로하고 법안을 통과시킬지, 다시한번 폐기함으로써 입법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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