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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믿지 못할 '의약품'…의사 신뢰도 멍든다

coverstory 믿지 못할 '의약품'…의사 신뢰도 멍든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9.04.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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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릭·태반주사제 재평가후 잇따른 시장 퇴출
의사들 "식약청 허가 믿고 처방했는데.."

▲ 최근 의약품 효능 논란으로 자칫 의료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함께 의약품 허가·관리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태반주사 모습.김선경기자 photo@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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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 정말 효과 있는 건가요?"

의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다. '써보니 좋았다'는 의사 자신의 경험과 정부기관의 '인증'(의약품 허가)이다.

그런데 최근 두 번째 근거에 문제가 생겼다.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을 입증하지 못한 제네릭 의약품과 효능이 없다고 판명난 태반주사제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온 것.

의사들은 이제 환자들의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믿었던 그 약, 알고보니 효능 없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3월 26일 2095품목을 대상으로 실시한 생동성 재평가 결과, 이중 41%에 해당하는 869품목만이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나머지 60% 품목은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회사가 자진 품목허가 취소를 선택한 경우가 대다수로, 이중에는 행정조치가 유보됐던 '자료미확보 및 검토불가 576품목'도 상당수 포함됐다. 처방 가능한 제품이 2000여개에서 870여 품목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같은 날 식약청은 또다른 의약품 재평가 결과를 공시했다. 이번에는 지난해부터 말썽을 빚었던 '인태반 추출물 주사제'(태반주사제)였다.

시중에 유통 중인 28개 품목 중 40%에 해당하는 11개 품목이 유용성을 인정받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중 일부는 국내 환자 대상 임상시험 결과 식염수 보다도 못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제품들 중에는 대웅제약·녹십자 등 유명 국내 제약회사가 판매하는 약들도 포함돼 있어 시장에 주는 충격이 더욱 컸다. 언론도 연일 의약품 효능에 대한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태반주사제를 취급하고 있다는 산부인과 개원의(서울 금천)는 "일본 수입 제품을 쓰다가 잠시 수입이 중단됐을 때 국내 회사 제품으로 바꿨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며 "식약청이 효과 있다고 허가해 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효과가 없다고 하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의약품 재평가를 통해 효과가 없거나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약들을 걸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절반 가까이 되는 기존 약들에 문제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면 애초 허가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도 했다.

이 개원의는 "환자들이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을 알고 와서 '태반주사제가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면서 "식약청 허가를 믿고 처방한 의사만 바보가 됐다"고 허탈해 했다.

의사들 "허가 믿고 처방했을 뿐이고"

사실 의약품 효능과 관련된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이번에 발표된 재평가 결과가 이미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는 데 있다.

생동성 시험의 경우 시험 결과를 조작한 사례가 무더기로 밝혀지면서 2006년 한차례 파문을 일었다. 그 후 3년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생동성 시험에 대한 불신과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식약청의 재평가 공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부적합 품목 대다수가 자료미확보 및 검토불가 576품목에 포함돼 이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해온 의료계의 주장이 타당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의약품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투명한 생동성 시험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단지 대체조제 수단으로 이용하도록 명시한 관련 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6년 당시 의협에서 생동성 이슈를 담당했던 양기화 전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당시 자료미확보 품목 중 절반 이상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번 재평가 결과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식약청이 업계 위주의 행정을 펼쳤다"고 꼬집었다.

태반주사제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 수입한 태반주사제가 인기를 끌자, 국내 회사들이 앞다투어 제품을 수입(생산)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 과정에서 원가를 낮추려다보니 효능이 다소 떨어지거나 제대로 임상 자료를 갖추지 못한 약들도 시장에 나오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이 의견이다.

이번 재평가 결과가 발표되기 이전부터 태반주사제의 효능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지난해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더욱 증폭됐다.

태반주사제 불법 유통·과대 광고 등으로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제약회사 사장들이 국회의원들의 "직접 맞아봤나"라는 예리한 질문에 "(탈모 방지와 미백) 효과가 없었다""(태반주사제를) 직접 맞은 적은 없다"고 대답해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내과 개원의(경기 안양)는 "전부터 걱정해왔던 문제들이 현실화됐다"며 "이번에 다시 적합 판정을 받은 약들도 있지만, 문제있는 약이 많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 대한태반임상연구회는 이번에 문제가 된 태반주사제 등과 관련, 임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침서를 선보일 예정인다. 김선경 기자 photo@kma.org

무너진 신뢰…다시 쌓을 순 없을까

한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때문에 의사들은 이번 의약품 효능 논란으로 자칫 의료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충청도에 개원하고 있는 내과 개원의는 "믿을 수 없는 약이 많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그 약을 처방하는 의사들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라며 "이미 처방받아간 환자들이 항의라도 한다면 의사 입장에서 뭐라고 설명해줘야 할 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내과 개원의는 "의사도 의약품 소비자"라며 "의사 스스로가 약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환자에게 그 약을 권고하기 어렵다. 허술한 허가과정으로 인해 오리지널에 대한 선호도가 늘어나면 결국 국내 산업이 역으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식약청이 의약품 규제기관으로서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다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로 생동성 시험의 경우 2006년 조작 파문 이후 2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뒤에야 겨우 처음으로 재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태반주사제 역시 국감에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환자들이 효과 없는 약을 비싼 값에 계속 투여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상구 서울의대 교수(약리학)는 "과거에 비해 식약청의 행정 능력이 많이 향상됐지만, 여전히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대응하는데 급급한 것이 사실"이라며 "생동성 시험의 경우에는 임상시험이라는 인식을 갖고 모든 과정을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노형근 대한임상약리학회 이사장(가천길병원 내과)은 "아무리 좋은 법규와 제도를 도입해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의약품 관리가 제대로 안되면 결국 국민이 손해를 보게 되는 만큼, 식약청이 자료를 검토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좀더 엄격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기관의 노력과 더불어 의사들도 할 일이 있다. 의약품을 처방하기 전에 좀더 꼼꼼히 임상자료들을 살펴보고, 적응증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희전 대한태반임상연구회장은 "무조건 환자에게 약을 권하기 보다는 성분과 안전성을 잘 보고 판단한 뒤 꼭 필요한 사람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처방하는 게 좋겠다"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태반주사제의 경우 오는 5월에 있을 학회에서 일반 의사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국내외 저널 리뷰를 토대로 한 가이드책자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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