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으로 관상동맥조영술을 했으나 관상동맥우회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수술이 가능한 인근 대학병원과 협의하여 전원하게 된 일이 있었다. 환자 상태가 급하다고 생각돼 환자와 함께 응급수송차로 이동해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응급실이 마치 전쟁터를 보는 것 같았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은 피로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보호자에게 접수를 하도록 하고 급성심근경색환자가 왔으나 봐달라 간호사에게 말했으나 누구하나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급하니 좀 서둘러 달라고했더니 간호사가 여기에 급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내가 알기로 응급환자라면 뇌출혈·급성 심근경색·폐색전증·장천공 등으로 어느정도 정해져 있으며 여기 있는 모든 환자가 응급은 아닐 것 같았다. 물론 환자에게 병력을 청취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과 전공의가 동행한 급성 심근경색환자라고 말했는데도 많은 환자로 진찰이 지연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그것도 한 지역의 응급의료체계 정점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서 그러하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으로는 응급환자의 기준이 의학적인 응급 이외에 환자 스스로가 응급으로 생각하는 것도 응급으로 인정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응급실 문턱이 너무 낮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응급실 당직 때 흔히 경험하겠지만 목소리 큰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무조건 내가 먼져 왔으니 나 먼저 봐달라 막무가내인 그런 환자에게 시달리다 정작 중요한 환자를 놓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번은 숙취한 환자에 시달리다 참을성이 많은 응급 복통환자를 뒤늦게 진찰한 경우도 있었다. 그 환자는 장천공으로 진단됐는데 숙취한 환자만 아니었으면 훨씬 일찍 진단했을 것이다.
솔직히 3차 병원 응급실이라 해도 1·2차 병원 응급실에서도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외국처럼 1·2차 병원을 경유해야만 3차 병원을 찾을 수 있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료인들의 주장을 귀기울이지 않는 것은 큰 장벽이다. 사실 있는 사람들이야 어디를 가든 혈연·지연·학연 혹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항상 그렇듯이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죽어나가는 것이다.
정부 및 정치, 언론계에서 국민과 의료인간의 불신을 조장하여 의료인의 의견을 무시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힘있는 자가 아니 힘없는 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 응급실에 대한 응급조치가 절실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