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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아체시티5] Timeless in 반다아체

[쓰나미&아체시티5] Timeless in 반다아체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5.03.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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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식사시간. 30끼를 컵라면과 햇반으로 해결해야만 했지만 우린 정말 맛있게 매 끼니를 때웠다[사진=nayan sthankiya]

뭔가 흔들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새벽 2시 30분. 천장이 부르르 흔들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자카르타에서 2시간 30분을 날라와 반다아체에서 보낸 첫날 밤에 '여진'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내 인생에 지진이라니?'하는 생각이 스치더니, 곧이어 '정말 반다아체에 있구나'하는 실감이 잠결에 스치고 지나갔다.

1차 긴급의료지원단과 4차 의료지원단이 파견된 시차가 한달여.

1차 의료지원단은 여진에 놀라 자다말고 새벽에 모두 집 밖으로 튀어 나갔다던데 4차 의료지원단은 모두들 별 기척이 잔다. 이런 무딘 것들.

아체에 도착한 1월 26일, 공항 벽은 여전히 실종자의 사진이 너덜너덜 붙어 있었고 공항 앞 공터에서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태우는 불덩이리가 난민천막 사이사이에서 메케한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차를 타고 반다아체시 외곽으로 들어가니 중심가보다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정작 긴급의료지원단을 괴롭힌 것은 여진이나 반군같은 거창한 위험이 아닌 물과 말라리아와 그리고 낯선 몇몇 생물이었다.

우선 물이 부족해 문제였다. 아무리 겨울이라고 하지만 반다아체는 적도다.

한국 8월만큼 습하고 더운 날씨에 하루종일 환자와 씨름한 의료진은 금방 땀범벅이 됐다. 하지만 오염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로는 샤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호기있게 샤워를 감행한 몇몇이 있었지만 며칠 후 가려움증을 호소했다.

땀이 나도 씻을 수 없게 되자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고 입고 있던 긴팔과 긴바지를 벗어 던졌다. 긴팔만 벗어던졌는데도 엄청 시원했다.

모기가 물기는 했지만 한국 모기보다 간지럽지않아 참을만 했다.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간 의료지원단 중 4명이 말라리아 유사 증세를 보여 입원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원한 밤은 그 날 이후로 끝이었다.

한국 말라리아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에서 말라리아에 걸리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모기 뿐 아니라 깨따방 캠프에 들어 온 첫날부터 같이 산 도마뱀과 손바닥만한 바퀴벌레들은 함께 살기가 영 껄끄러웠다.

거울과 시계가 없는 세상이란 점은 좋았다.

처음 시계와 거울이 아체 공항에 없다는 게 대단히 이상했다. 귀국 후에 인천국제 공항에 얼마나 많은 시계와 거울이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

민가를 잠시 빌린 깨따방 의료캠프도 마찬가지 거울도 시계도 없었다.

물이 귀해 면도도, 세수도 못했지만 거울이 없으니 모두들 "알게 뭐야"였다.

시간관념 역시 남달랐다. 현지인의 한두시간 늦는 약속은 별로 문제될 것도 없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는 생활.

어느덧 의료지원단원들은 2시간의 시차를 극복해 나가 듯 그렇게 서서히 아체의 시간과 삶에 동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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