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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창립]직선의협에 바란다-더불어 사는 세상 속으로

[2001창립]직선의협에 바란다-더불어 사는 세상 속으로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1.11.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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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표(광주·홍경표내과의원)

시민·사회 각 조직 교류 및 연대강화

 

 

2000년의 첫 태양을 맞으며 TV에서는 세계 주요국의 신년 행사를 중계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소망을 듣는 인터뷰도 이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아빠(남편) 하는 일이 잘되고 식구들 모두 건강하며 자식들이 공부 잘하기를 기원하였다. 반면 서양사람 대부분은 개인과 민족 간에 원한과 분노와 증오심이 사라지고 전쟁과 기아와 질병에서 해방되며 평화와 사랑이 충만하기를 바란다는 소원을 피력하는 것이었다.

지도자들의 모임에서나 행해지는 훌륭하고, 한편 위선적으로도 느껴지는 `연설'을 평범한 서양인들이 자연스레 말하는데 기가 질렸고 한국사회와 서양사회가 갖는 극단적 문화적 차이를 실감한 기억은 충격적이었다.

국가개념은 절대권력을 갖는 체제로 개인은 독립적으로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절대주의' 개념으로부터 공동체적 삶의 `자유로이 합의된 사회관계'로 변화되었다.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천부적 권리인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국가는 종종 지배적인 사회계급의 숨겨진 음모를 표현하며, 그 경우 법률이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사용되는 수단이다. 지식의 약호와 언술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변형되었다. 이러한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 대립함으로써만 존재하며 전쟁과 고통을 야기함으로써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거대한 걸림돌이 되었다.

록크, 몽테스키외, 루소, 칸트 등에 힘입어 프랑스 혁명은 피의 대가를 치르며 시민의식을 성숙시켰다. 이 의식은 독립된 인간으로서 책임을 바탕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서 각자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입장,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의식이다. 세계사는 동양에서 시작하였으나 서양에서 비로소 자기의식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동양에서는 오직 한사람만이 자기가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몇 사람만 자유스러웠으며, 게르만적 세계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고 표현된다.

우리는 그나마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경험한지 불과 10년 안팎에 불과하다. 전통적으로 씨족사회를 바탕으로 한 유교적 관습은 개인이 아닌 가족중심의 공동체를 개별단위로 국가라는 하나의 대가족공동체를 형성했다. 가족주의 국가관은 공사(公私)가 구별되지 않고 혈연, 지연, 학연에 따른 집단 이기주의로 변모하여, 사회문제를 집단행동으로 해결하고 사적 이익을 중시하여 공공질서를 약화시키고 사회규범과 실천윤리를 이중구조화 함으로써 합리적 공론형성을 저해한다.

개발독재시대의 국민교육헌장과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라는 케네디의 연설도 국가가 우선임을 내세워 국가권력을 장악한 기득권의 체제수호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의식은 많은 운동가의 노력으로 일깨워졌다.

소위 `운동권'이라는 단어처럼 양가감정이 풍부한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문민시대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대변되는 사회운동은 지역, 노동, 여성, 교육, 환경, 통일, 경제, 평화, 봉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변모되었다. 역시 모든 개별적 인간이 지닌 보편적 가치와 평등,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은 종종 사회주의로,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나 빨갱이로 취급되는 색깔론에 의해 쉽게 매도당한다.

유럽연합 15개국중에서 13국이 사회민주당 정권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는 색깔론 뒤에는 악의적 정치음모가 있음을 모르는 양 많은 사람이 부화뇌동한다. 반성하고 지양할 숱한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은 확대될 것이고 신장되어야 하며 그렇게 요구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각 개인이 속한 다양한 사회집단의 정체성 확립과 정당성확보를 정치적 참여를 통해 이루는 참여민주주의에 의한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후진성에 의하여 정치적 다원화에 따른 사회적 규범과 질서는 다양한 층위간의 민주적 제도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힘겨루기에 의한 폭력적 방법으로 형성된다. 결말은 항상 지배권력이 가진 의도에 의해 좌우된다. 이점은 의약분업의 추진과정에서 정부, 시민단체, 의협 중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의료는 의학적 지식을 매개로 한 인술의 실현이자 경제활동의 수단이면서 권력의 통치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자비정신에 입각해 무의탁 환자를 무료 진료하는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기관이 많았고 왕들도 의학을 공부하거나 의원(醫員)의 교육에 충실하였는데 민중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의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의 거시적 권력은 국가에 있다. 그러나 의사와 기타 의료인, 약사, 제약사, 유사의료 행위자들과의 관계, 사회적 신분, 경제적 관계, 환자에 대한 권위 등 미시적 권력관계는 도처에 산재한다.

정치적 목적에 의한 `의사탄압'(우리는 모두 그렇게 표현한다)이라는 호소를 외부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배계급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식인을 이용하므로 의사는 지배계급의 주변부에 유기적으로 동원된 권력유지의 수단일 수 있다. 의료를 행하는 전문가 -의사-는 다른 모든 사람-시민-에 대해 배타적 독점권을 가지기 때문에 최소한 의료의 영역에서는 지배계급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소위 `의료대란'은 지배계급에 내재한 위계구조와 균열이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있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의사는 엄연히 기층세력과 구별되는 소자본가에 속한다. 따라서 의권쟁취를 구호로 집단행동을 했을 때 국민건강권확보를 위한다는 명분은 적어도 시민들이 판단하기에는 구실에 불과했다. 언론과 시민단체, 궁극적으로 일반 시민에게 의사의 입장을 홍보하고 이해시켜서 `우리 편'으로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실현시킬 수단이 없다는 점은 의협이 해결하지 못하는 심각한 고민 중의 하나다.

집단투쟁의 와중에서 시민들의 관심은 왜 의사가 의사이기를 포기하려 하는가에 있지 않았다. 치료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에만 관심이 집중되었고 집단행동으로 인한 이득은 모두 의사의 몫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의사집단은 기층과는 유리된 지배블록이며 그들이 갖는 권력은 상상외로 거대함을 재삼 확인한 것이다. 이 점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노동운동이 공권력으로 간단히 진압된 사례와 좋은 대조를 보임으로써 보다 명확하게 되었다.

결국 의협의 의권쟁취투쟁 구호는 시민의 호응을 받기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당시 의쟁투위원장이었던 신임 회장은 `선투쟁 후협상'의 방법을 파기하는 공약을 하였고 대다수 회원들이 수긍하였다.

의협은 감정개입, 특수성, 배타주의, 자기정향, 성과보다는 감정중립, 확산성, 보편주의, 집단정향과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참여민주주의란 사회의 보통구성원이 주체가 되어 아래로부터 위로의 행동에 의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사회는 먼저 변했고 의사회는 뒤늦게 변했다. 의학이 개인의 건강과 질병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집단(사회)의 건강과 질병에 관해서도 당연한 관심을 가져야 하다.

시민사회가 발전되어 온 역사를 이해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중심으로 다양한 계층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때 시민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의협은 신뢰와 의권을 확립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시민들이 이미 찾아 나선 건강권을 `무식한 시민단체'로 매도하여 배제한다면 의사의 권익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앉을 의자의 다리를 잘라내는 것과 같다. `의사 죽이기'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삐걱거리는 의자 다리를 고칠 사람은 바로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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