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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신년]히포크라테스/안철수

[2001신년]히포크라테스/안철수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1.01.0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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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일 선택 후회없어"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안철수 사장처럼 의사라는 본업과 철저히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일에서 병든 컴퓨터를 고치는 일로 전업했다는 정도. 그런데 요즘엔 컴퓨터가 고장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돼버렸으니, 어쩌면 컴퓨터 병을 고치는 일이 환자를 치료하는 행위와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안 사장이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데에는 아주 우연한 계기가 있다. 지금부터 11년 전인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저는 의과대학 박사과정 학생이었습니다. 전공이 환자 진료보다는 실험·연구 방면이었기 때문에 전공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컴퓨터를 배웠는데 어느날 컴퓨터 바이러스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죠.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컴퓨터가 감염됐을 정도로 컴퓨터 바이러스의 피해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대비책은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초보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봐야 겠다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안 사장은 며칠 밤낮을 투자해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반에 공개했다. 반응은 엄청났다. 그날 이후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할 때마다 안 사장에게 해결 요청이 쇄도했다.
“사명감도 들었고 보람도 느꼈기 때문에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출근해서는 하루종일 의학 전공 일을 하는 힘든 생활을 7년간이나 계속 하게 되었지요.”

언제까지나 그런 생활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컴퓨터와 의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 전까지는 대학원생으로서 나름대로 시간을 쪼개서 두 가지 모두를 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대학에 돌아가면 이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니 전공에만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안사장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컴퓨터를 선택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학에 돌아가서도 욕심을 부려 두 가지 일을 다 한다면 두 가지 모두 이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컴퓨터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자부심, 보람, 사명감, 성취감 등을 의학 공부에서는 가질 수 없었습니다. 살아 온 시간 보다 앞으로 해나갈 것이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결국 14년간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던 의학을 깨끗이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서울의대 졸업, 20대 의학박사, 20대 의대 교수….
누구나 동경할 만한 순탄대로의 삶. 이후에도 충분히 보장된 인생이 펼쳐져 있었지만 안 사장은 그런것에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진짜 사는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진로를 결정하기 까지 혼자서 고민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가족들이 자신의 결정을 믿고 따라준 것에 큰 힘을 얻었다며 고마워 했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지, 의사의 길을 접은 것에 후회는 없는지를 물어봤다.
“후회는 없습니다. 어찌보면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와 의사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밝은 부분으로 만들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또 가치관과 철학이 있어서 수많은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점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들이 사회 각 분야로 활발히 진출하는 추세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각에선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길러낸 최고급 인력이 전혀 엉뚱한 길로 나가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 사장의 생각은 이렇다.

“의사들이 사회진출을 하더라도 전공 지식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분야에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개인적·사회적 낭비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안 좋은 선례에 해당하겠지요.

인터뷰 말미에 의약분업 사태를 밖에서 지켜 본 소감을 넌지시 물었더니 “정부와 의료계 모두 잘못이 있다”는 전형적인 제3자식 답변을 먼저 한 후, “의료계가 초반부터 강한 결속력을 보여줬으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을 덧붙였다.

안철수 사장은 1962년 부산 출생으로 부산고등학교,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의대 조교, 단국의대 전임강사 및 의예과 학과장 등을 지냈으며 91년 박사학위를 받고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91∼94)했다.
1995년 2월 안철수연구소를 차려 현재 대표이사로 있으며 97년에는 미국 펜실바니아대학 공대 및 와튼스쿨 기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프트웨어벤처협의회 회장, 아시아안티바이러스연구협회 부회장, 정보보호산업협의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 벤처기업협회 이사, 소프트웨어진흥원 법제도개선 자문위원, 한국과학기술평가원 예산사전조정 심의의원 등 이 분야 관련 직함 십여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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