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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신년]히포크라테스/다양한 사회진출

[2001신년]히포크라테스/다양한 사회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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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01.0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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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혁(성균관대 이사장)

다양한 사회진출을 꿈꾸는 의사들에게

 

 

일제시 현재의 의예과에 해당하는 대학예과에 다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예과생은 누구나 세가지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이 말은 불문률과도 같았으며 예과생이 되면 의례히 되풀이되는 구호이기도 하였다.


세가지중 첫째는 독서였다. 최소한 세계문학전집등 몇가지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며 책 리스트가 전해졌었다. 둘째는 어학이었다. 두가지 이상을 반드시 매스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독일어가 중심이었으며 상당히 많은 시간(1주에 12시간 정도)이 이에 할당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던 영어교육이 예과 과정에서도 계속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셋째는 반드시 한가지 이상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스포츠는 필수였다. 당시 한국인 학생들은 축구부원 아니면 농구부원이 되어 스포츠를 즐겼다. 스포츠 이외에 다른 취미도 꼭 갖도록 하라고 선배들은 일깨워 주었다.

이 세가지 숙제를 예과과정 동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의학 교육과정은 다른 분야보다 길다. 여기에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데 대하여는 더 설명할 나위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의대생들의 수준은 대단히 높다. 마음먹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앞서 적은 세가지 숙제는 오늘날에도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의학공부를 했다고 해서 꼭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의대생 중에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여 다른 분야로 전공을 바꾸는 사람도 꽤 있다. 의사면허증을 취득한 후에 마음을 바꾸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상당한 수준의 의사생활을 하다가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때로는 법적 정년을 계기로 비의사생활을 시작하는 인사도 있다.

필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예방의학교실에서 교수조무원(무급조교)생활을 하다가 1948년에 결혼했는데 빙장되시는 분이 모 일간지를 경영하셨던 관계로 한때 기자생활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약2개월 동안 신문사로 출근하였다.

하루는 상사되는 분이 부르더니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사'딱지가 붙었으니 손해 볼 것이 뻔하다”면서 빨리 그만두고 의학의 길을 밟으라는 것이다. 그 분은 의학을 공부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언론계에 입문했다는 설명이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학사'간판을 취득했더라면 기자생활은 시작하지 안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부언하였다.

요사이 같으면 의사출신 기자도 상당수가 있지만 당시에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의사라는 레테르가 붙는데서 오는 불이익이 왕왕 있는것도 사실이다.
의학을 공부했지만 타분야에서 일하는 인사들은 점점 늘고있다.

필자 주변에도 몇분이 있다. 예컨대 정진우(鄭鎭宇)씨는 대표적이다.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을 졸업하였다. 후에 의학박사학위도 취득하였지만 서울대 음대교수로서 활약하였고 현재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필자의 대학동기중의 한사람인 이상일(李相一)박사는 보문동에서 착실하게 개원하고 있다가 생각한 바 있어 88년에 증권계에 뜻을 두게 되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증권전문가가 되었다. 자택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컴퓨터로 모든 일을 처리하니 마음이 편하다며 만족스러워 한다.

서울의대 5년후배인 강신호(姜信浩)박사도 대단하다. 동아제약 회장으로 국제적 명성을 날리고 있다. 산업기술진흥협회장, 전경련 부회장등 여러 직책을 통하여 위용을 과시하기도 한다.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지만 살펴보면 적잖은 분들이 의료세계 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요구되는데 기본적으로 의사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나름대로 특기와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앞에서 적은 바와 같이 어떠한 일이건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특징이나 취미를 살릴 수 있는 계기는 심심치 않게 찾아들며 애초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되기도 한다.

지난 의료대란 동안에 의사나 의대생들은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였다. 필자가 만난 의대생중의 한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가지 특기가 있습니다. 시험이라면 어떠한 종류이든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 특기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다른 분야의 시험에 응할 생각도 해 봅니다.” 이 학생의 말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시험에 시험을 거쳐서 의사가 되는 것인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안달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뜻이다.

우리 주변에는 의사출신이면서 언론계, 기업계, 법조계, 종교계, 예능계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늘고있다. 국회의원 정치인으로서 높이 평가되는 분들도 적지 않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그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복잡하고 다기화하고 있다. 의사라고해서 의업에만 집착할 때가 아닌상 싶다. 우리는 보다 시야를 넓혀 세상을 크게 내다봐야 한다.
필자는 다양한 사회진출을 꿈꾸는 의사들에게 몇가지 사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는 의학과 전연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에도 의학이 지니는 전문성은 언제나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래 의학이란 종합적 예술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학에는 어느 분야에서나 활용될 수 있는 원리가 상당히 많다.

둘째로는 보다 적극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의사가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장고(長考)한 끝에 도달한 결론일 것이다. 이왕에 그렇게 결심했다면 보다 적극성을 띄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후회만이 남게 된다.

셋째로는 이 세상에는 인체의 구조나 기능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는 사실에 착안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재 인류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공학이 인체의 구조나 기능을 아는 사람 즉 의사와 만나서 창출해낼 수 있는 분야는 상상외로 많다. 이러한 분야에서는 얼마쯤이라도 벤처정신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넷째로는 보다 많은 의사들이 국회나 행정부에 진출했으면 하는 점이다. 의학이 차지하고 있는 막중한 비중에 비하면 이와 관련된 입법과 행정을 담당하는 인사들이 너무나 적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들은 사태가 지나간 후에 후회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습성에 젖어있다.

이와 같은 습성 때문에 파생되는 부작용이나 피해는 의외로 크다. 남에게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의사가 입법부에 진출하고 행정부에서 일해야 한다. 물론 마음대로 되는 일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끝으로 국제적·세계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WHO등 UN기관이나 세계기구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숫자가 너무 적다. 의학은 물론이지만 국익을 위해서도 이러한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국가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의사 개개인에 의존할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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