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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신년]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의약품 유통체계

[2001신년]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의약품 유통체계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1.01.0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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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환(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위원)

의약품 유통체계 문제점 및 개선방안

 

 

누누이 지적되는 우리 나라 의약품 유통의 문제점을 요약해서 열거하자면, 1)의약품 도매업소의 영세성, 도매업소 수의 과다, 도매상 거래 비중의 과소, 제약회사와 병·의원, 약국간의 직거래 비중 과다 등의 구조적 문제 2)물류 시설 및 장비의 중복 투자와 인력의 과다 배치, 물류 표준화 및 정보 전산화 미비 등으로 인한 물류비 과다와 급속한 물류비 증가 3)시장 개방으로 선진 유통기술 및 자본력을 갖춘 다국적 유통업체의 국내 진출,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다품목 소량 재고의 필요성 등 환경 변화에 대한 대비 미흡 4)불법, 변칙 거래 등 의약품 유통과 관련된 각종 부조리 등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우리 나라 의약품 유통체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개선 방향과 정책 목표도 명백하다. 문제점을 뒤집으면 곧 정책 목표가 된다. 문제는 개선 방안이다. 현안으로 걸려 있는 유통체계 개선 정책들 즉, 물류센터 설립, `의약품대금 직불제도' 도입, 그리고 유통정보화 체계 구축을 검토해보자.

정부가 위에서 열거한 우리 나라 의약품 유통체계의 모든 문제점을 제거할 수 있는 만병 통치약으로 내놓은 것이 의약품물류센터 설립이다. 비록 이름은 협동조합이고 법인으로 설립한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예산까지 지원해가며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의 의약품 흐름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각종 부조리도 제거하고, 다국적 유통업체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의뢰하여 수행한 한 연구보고서나 의약품물류협동조합(물류센터의 공식 명칭)의 발표에 의하면, 물류센터를 설립하면 의약품 물류비가 엄청나게 절감된다고 한다. 제약회사나 도매상의 경비 절감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자원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아주 환상적인 사업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해본 제약회사와 도매상들은 물류센터의 사업성을 믿지 않고 물류조합 가입을 꺼려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제약회사나 도매상에 막강한 압력 수단을 가지고 있는 정부가 물류협동조합 가입에 소극적인 회사들에게 유무형의 압력을 가하고, 법적으로 조합 가입 여부와 상관이 없는 의료보험 의약품 대금 직접 지불 제도를 물류조합의 이점인양 선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는 유령 법인에 불과한 한국의약품물류협동조합의 이사장이 제약회사에 보낸 조합 가입 촉구 서신에서 “물류조합 비가입 회사에게는 대금결제상 불이익이 초래될 수도 있다”고 협박하고 있다.

물류센터 설립은 시작과 동기부터가 잘못되었다. 현 대통령이 집권 직후 “의약품 유통에 관한 비리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림에 따라 추진되기 시작했다. 의약품 유통 비리는 주로 의료기관과 의약품 공급업자 사이의 비리 또는 부조리를 뜻하는데 이것은 물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물류센터 설립이 얼마나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느냐 하면, 모법인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을 준용한다고 하고서는, 그것이 불가하자, 최근 입법예고된 `의약품물류협동조합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정(안)'에는 민법 및 상법 관련 규정을 준용한다고 되어 있다. 또 동 규정에는 전무이사 자격을 `5급이상 공무원으로 7년 이상 근무한 자'로 규정한 것을 보면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어느 선진국에서 정부가 의약품 물류 사업을 하고 있는가.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의 개입 없이도 도매상과 물류가 잘 발달되어 있다. 의약품 물류 사업에 시장 기능이 작동 안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렇게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고 어두운 구석이 많은 사업이라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재벌이나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았을까 하고 질문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수지타산은 탁상공론으로 나오지 않는다. 선진국과는 달리, 의약품 유통 체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특히 정부의 규제에 문제는 없는지, 또 지역 분할 등 담합 행위는 없는지 정부의 잘못부터 살피고 그것부터 시정하여 장기간 관찰해보고 정부 개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어떻든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약품물류센터 설립 추진을 중단하여야 한다.

명분도 근거도 없는 물류센터 설립을 추진하다 파생한 것이 `의약품대금 직불제도'이다. 현행과 같이 의약품 대금을 의약품을 사용한 요양기관이 의약품 공급자에게 지불하는 것이 아니고, 의약품 대금 중 건강보험 청구분에 한해서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의약품 공급자에게 지불하는 제도이다. 물류 사업만으로는 조합 가입의 메리트가 없다고 하자, 의약품 대금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직접 수령하여 지급함으로써 대금결제 기간을 단축시켜주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그러나 물류조합에게만 독점적 의약품 대금 수령 대행권을 부여하는 것이 법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제약회사와 도매업자도 직접 수령의 대상이 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동 법이 2000년 7월 1월부터 시행되었으나 관련 보건복지부령은 제정되지 않았고 건강보험공단은 현재 제약회사나 도매업자에게 의약품 대금을 직접 지불하지 않고 있다.
 
엄연히 법 조항에 규정되어 있는 `의약품대금 직불제도'의 타당성을 지금에 와서 길게 논의할 생각은 없지만, 일반 상거래에서 볼 수 없는 극히 이례적인 조치라는 것과 정부가 주장하는 목적이 사회적 타당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부는 직불제도의 목적을 의약품 거래로 인한 요양기관의 이윤을 차단하고 의약품 거래를 투명하게 하여 국민의료비를 절감토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의약품 거래로 인한 요양기관의 이윤 차단은 의약품 대금의 `실거래가 상환제도' 실시로 끝난 얘기다. 의약품 대금이 요양기관을 거치지 않고 공급자에게 직접 지불된다고 해서 요양기관의 이윤이 차단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의약품 공급자와 요양기관 사이에 뒷돈 거래 등 부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직불제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지 실행 가능하고 일리 있는 것은 `현재 평균 253일인 외상매출채권일을 타 산업과 유사하게 60일 이내로 축소하려는 의지'인데, 의약품 거래에서 외상매출채권일이 지나치게 길다면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적용하여 다스리면 될 것이지 굳이 극단적인 조치인 직불제도를 도입해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유사한 입법 사례로 유일하게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4조에서 `발주자는 원 수급업자가 제조·수리 또는 시공한 분에 해당하는 하도급 대금을 수급업자에게 직접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들고 있는데 `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 뿐 의약품대금 직불제도처럼 `직접 지급한다'는 강제 규정이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을 발주자로, 진료기관을 원 수급사업자로, 의약품 공급자를 수급업자로 간주하는 것도 무리이거니와, 의료기관 전체를, 하도급 대금을 떼어먹고 달아나는 일부 악덕 건설업자처럼 취급하여 의약품 대금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체 의료인을 모욕하는 행위다. 어떻든 의약품대금 직불제도는 실시해서는 안 되며 언젠가 관련 조항을 폐기해야 한다.

의약품 유통체계 개선을 위해 현재 정부가 하고 있는 일 중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의약품 유통 정보화 추진이다. 의약품 표준물류코드와 표준바코드를 제정하고, 의약품 포장을 표준화하고, POS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물류정보화의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나, 인터넷을 통한 의약품 전자상거래가 용이하도록 EDI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과, 의료정책 수립과 의약품 정보 제공을 위해 DB를 구축하는 일은 정부가 서둘러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제반 유통정보화 기반을 종합적으로 구축하기 위하여 전담사업자로 하여금 의약품유통종합시스템(HELFline)을 개발하게 한 것도 잘 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정보인프라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말 그대로 인프라를 제공하는데 그쳐야지, `한국의약품정보센터(KOPAMS)'라는 법인을 설립하여 정보시스템을 독점하게 하고 독점적으로 e-business를 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이다.

현실이 아무리 불만족스럽다 하더라도 변화가 곧 개선이 아니다. 개악이 될 수도 있다. 올바른 개혁을 하려면 현 상황을 야기한 철저한 원인 분석이 있어야 하고 인과관계를 따져 정부가 할 일을 가려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시장 실패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원인을 파고들면 법·제도나 정부의 규제가 원인인 것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보다 시장 기능을 회복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물론 정부의 개입 없이는 개선될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자유시장체제에 근본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시장 메카니즘의 우수성이 입증되었으므로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 개입을 삼가는 것이 좋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할 때는 아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할 일을 선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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