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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MD의 위상 ④

21세기 MD의 위상 ④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2.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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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학위 허울보다 내실있는 임상전문의 우대


잘못된 위상 '의학박사'

21세기 의사는 평생교육직업이다.

일제시대처럼 어려운 의학공부를 하고 난 다음 대학실험실에 들어가 몇 년간 쥐나 토끼를 상대로 연구생활에 열중한 결과, 의학박사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면 의사공부가 끝나는 것은 옛날이야기이다.

당시 의학박사라는 칭호는 간판에 내걸기 위한 선전용이고 학위내용이 본인의 임상실력과는 거리가 멀며, 동양사회의 학자존경에 어필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일본의료계에서는 아직도 전문의보다 의학박사 되기를 더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박사칭호가 사회에서 존경되는 동양풍조는 천재학자 공자에 기인한다. 현실적인 사회윤리학자인 그를 우리 선조들은 성인으로 모셔왔던 것이다. 논어에서 그는 "학문을 익혀서 배우면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기쁨이 아닌가"하여 평생교육을 설득했으니, 이 말이 후세 학자들에게 둘도 없는 격려사가 되어왔다. 그리하여 공자사상을 받드는 학자들의 교육결과 옛 동양사회에서 학자를 존경하는 풍조가 조성되었고, 의사들은 우수한 임상의사라는 이미지를 학자타이틀(의학박사)로 단장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따지고 보면 환자에 대한 위선행위이기도하다.

그런데 공자는 실효성 없는 사색(연구)은 탁상공론이라고 경계한바 있으니, 지금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환자진료와 전혀 무관한 실험실연구를 틀림없이 '탁상공론'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의사는 병을 치료하는 직업이고 여기엔 경험과 공부를 통한 실력이 가장 중요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실력을 존경간판으로 대치시켜 환자에게 학자적이며, 실력가라는 환상을 심어주려는 학위가 바로 일본식 의학박사였다.

한국에도 아직 의학박사라는 일제시대의 유물이 남아있어, 전문의에 더하여 이러한 호칭이 있어야만 자격을 갖춘 실력 있는 의사라는 것을 환자에게 알리려 든다(필자도 그중 하나였다).

알다시피 한국의학은 이웃나라에서 가장 못난 두 가지를 모방하고 있으니 그 하나는 중국식 이원제 의료제도요, 다른 하나는 임상의학에서 '백해무익'한 일본식 의학박사 칭호이다.

여기서 '백해'란 말은 임상교육에 필요 없는 연구생활에 귀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는 뜻이고, '무익'이라 함은 환자케어와 치료에 실험실 업적이 소용없는 일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일본제국이 근대의학을 육성하면서 왜 이러한 비현실적 학위를 도입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당시 상아탑 분위기를 가장 중요시 했던 개화기 일본대학의 의학부는 연구와 의과대학 교수직 양성에 치중했던 나머지 많은 의학교육자에 필요한 의학박사 칭호를 남발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이 칭호가 일반 개원의사에게도 보급되어 그들에게 실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간판으로 이용되어 지금까지 100여 년간 지속되어 왔으니 현재 일본의사의 9할이 박사소유자라고 전한다.

일본서 명치초기에 독일의학을 모방하면서 독일식 박사학위를 잘못 도입한 것이 일본식 학위다. 일본의학박사의 성격이 Ph.D.인데 비해 Dr. Med.라 부르는 독일의학박사는 의대 상급학년 때 이미 학위논문을 준비할 수 있고 많은 경우 의사면허증을 받은 직후에도 학위취득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Ph.D.와는 정도가 다른 학위가 독일식 의학박사이지만 본장에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

일본서 잘못 흡수한 독일학위는 한국에 전파되어 미국과 유럽의 기초의학용 Ph.D.로 진전하여 의학석사 다음 박사라는 옥상옥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랑스러운 위상 전문의


미국의학계에서는 임상실력을 갖춘 전문의가 가장 중요시 되고, 전문의 자격이 있고 없고는 의사대우와 직결된다. 극히 일부 의대교수들이 갖고 있는 Ph.D. 학위는 임상의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런 학위소유자는 연구지향타입이라 사료되어 연구직 이외의 취직에 불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참고로 의대지망생 중에 Ph.D. 소유자가 더러 있고 미국일반인은 Ph.D.가 M.D.보다 낮은 학위로 알고 있으며, 사실 그렇다.

다행히도 한국의학계는 1960년대부터 미국식 전문의제도가 확정되어 명실상부한 실력 있는 임상전문의를 꾸준히 양성하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의 임상의학이 국제적으로 뒤처졌음을 자각한 학계유지들에 의해 전문의제도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구체적으로는 1993년에 가서야 '전문의검토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그 후에 각 전문의학회별로 인정하는 '인정의' 와 '전문의'라는 자격이 생겼으나, 정부와 보험에서 인정하지 않고 사회(환자)에 자격표시(광고)하는 것 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2년 2월에야 겨우 일본후생성에서 자격(전문의)광고를 허용하기에 이르렀지만, 실질적으로 특전이라고는 전혀 없는 유명무실한 허수아비 자격증에 불과하다.

일본 기초의학의 우수성은 세계에 잘 알려졌으되, 임상의학은 별 것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학계 일각에서는 "일본에서 전문의자격보다 박사호칭을 우대하는 일이 임상의학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의학박사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하지 않는 한, 일본 임상의의 질적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도 조만간 전문의제도의 틀이 잡히어, 전문의가 우대되는 날이 오리라 예측된다.

한국의학계에서도 일제와 구시대유물인 '의학박사'의 개선론이 대두되거나, 아니면 '박사무용론'이 나올만하다. 관심을 가진 논객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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