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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수요조사 속사정 "학장이 무슨 힘이 있겠나"

의대정원 수요조사 속사정 "학장이 무슨 힘이 있겠나"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4.02.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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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한 증원 규모, 자릿수 바뀌는 건 기본…2배, 3배, 많게는 10배까지
"의대는 눈칫밥 신세, 설마 이럴 줄 몰랐다"…"2000명 감당 절대 불가"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사진=김선경 기자] ⓒ의협신문

의과대학 학장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총장과 얘기하는데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고…

A 의대 학장이 고백한 의대정원 수요조사 당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21일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정원 '희망' 수요 결과를 발표했다. 2025학년도 기준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 2030년도는 최대 3953명에 이르렀다.

당시 수요조사를 써냈던 의대 학장들은 각 학교의 여건을 고려해 증원 규모를 제시했지만 제출될 때는 최소 2~3배 이상 늘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2000명 증원은 현장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도 했다.

A 의대 학장은 [의협신문]과 통화에서 "평소에도 대학 본부를 갈 때면 매일 예산 문제로 구박받는 신세"라고 털어놓았다. 학생이 적더라도 많은 수의 기초·임상 교수가 필요한 의학교육 특성상, 대학 본부 또는 총장·이사장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 학장은 "대학은 의대 정원을 '늘려놓으면 무조건 채워지는 정원'이라고 인식한다"며 "무조건 숫자를 올려라, 지금 최대한 많이 올려두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절대 없다는 말에 정원을 최대한 많이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A 의대가 정원 50명 이하인 미니의대이고 정부 지원을 기대할 수 있는 국립대임을 고려해, 정원을 80명 이내로 맞출 수 있는 두자릿수를 불렀다"며 "결국 정부에는 2~3배 늘어난 세자릿수로 전달됐다"고 한탄했다.

충청·전라 권역의 B 국립의대는 무려 '10배' 이상 뻥튀기 됐다는 후문이다.

B 의대 교수는 "증원 가능 인원을 증설 가능한 강의실 규모로 추계해 두자릿수로 답했는데, 10배 이상이 됐더라"고 전했다. 예컨대 20명 증원이 가능하다 답했더니 200~300명으로 제출된 꼴이라는 것이다. "지방 의대 중에는 의대에서 '0명'이라 말했는데도 대학 본부를 거치면서 수십 많게는 100명 이상으로 제출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학교육 핵심은 인턴과 전공의 수련인데 정작 이를 담당할 대학병원의 수용 역량은 조사하지 않았다"며 "전국 의대 정원이 500명만 늘어도 수천억 예산이 필요한데 2000명을 늘린다면 수도권의 대기업 사립의대들 외에는 감당할 수 없다. 전국 모든 정원이 대폭 늘면 지역의 필수의료 교수마저 수도권으로 떠나고 격차가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도권·경기 권역의 C 사립의대 학장도 "교수들끼리는 한자릿수를 불렀는데 2~3배 늘어서 두자릿수가 됐다"고 말했다.

C 학장은 "C 의대는 교육병원이 많으니 그나마 나은 상황이지만, 그렇더라도 여기서 학생 수가 더 늘어나면 교수들이 교육·실습하며 학생들 얼굴이나 제대로 보이겠느냐"고 우려했다.

C 학장은 "우리 학교는 정원을 20% 늘리는 데만 해도 강의실 등 한 학년에만 2억 5000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본과 4학년까지 생각하면 10억이 필요하다"며 "정부로부터 사립의대 학장들이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립의대에 정부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상 권역의 D 국립의대도, 거대 사립재단의 지원을 기대해 볼 만한 E 사립의대도 마찬가지로 증원 규모가 2~3배로 늘어 감당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D 의대 학장은 "의대에서 제안한 숫자보다 더 많은 수를 본부가 요청했다"며 "숫자를 늘리면서도 이 정도 숫자면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거듭 피력했고, 제출할 때에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누락된 모양"이라고 밝혔다. 

E 사립의대 학장은 "최소 증원 규모를 적어내면서도 재단 지원 외 정부 지원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정부 발표 후 '아차' 싶었다"며 "최소 증원 규모를 넘어선 증원이 이뤄진다면 우리 학교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E 학장은 "(정부의 행보가)이렇게까지 상식적이지 않고 너무할 줄 몰랐다. 선후 관계가 잘못됐다"며 "정부가 먼저 수도권과 지방에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 어떻게 모집하고 배치해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추계한 다음에 의대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물어야 의대 입장에서도 계획을 짜고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의대는 경매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앞서 전국 40개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요조사 당시, 각 대학의 실제 교육여건에 비해 무리한 규모를 제출했다"고 시인했다.

KAMC는 의대정원 수요조사 결과에 대해 "대규모 증원이 초래할 결과보다도 대학의 위상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며 "공문 자체가 대학 본부로 갔기에 학장 의견 외 본부 측 입장도 반영돼 나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40개 의대 학장의 이름으로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의 전면 재조정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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