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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뇌성마비 장애...산부인과의사 12억원 배상 판결 가혹"

"신생아 뇌성마비 장애...산부인과의사 12억원 배상 판결 가혹"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23.07.25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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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법 평택지원 "NST 실시간 확인·즉각 대응 안해...주의의무 위반" 판단
직선제 산의회 "분만현장 항상 위험…분만 중단 부추기는 결과 초래" 우려
의료전문 변호사 "과실 외 원인 배제...보험금 지급 소송 감정자료 인용 부당"

ⓒ의협신문
ⓒ의협신문

임신부가 태아의 태동이 문제가 있어 산부인과의원을 내원했는데, 의사가 즉시 태아곤란증 등을 염두에 두고 직접 진료를 하지 않고 필요한 검사 등을 소홀히 해 태아가 뇌성마비 장애를 입었다는 이유로 법원이 1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신생아와 부모의 심정을 어떤 의사들보다 깊이 공감하며 진심 어린 위로를 보낸다"면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진료실과 분만실을 기키며 국민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분만의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분만 중단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재판부는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에 대해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가 신생아의 부모에게 1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도분만을 하루 앞둔 임신부가 태동이 약하다고 증상을 말했지만, 의사가 바로 진료하지 않고 상태 관찰을 소홀히 한 점이 태아 장애 발생에 있어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신부는 유도분만 예정일 하루 전인 2016년 11월 20일(일요일) 오전부터 생리통 정도의 진통을 느꼈고, 저녁 6시부터 태동이 평소보다 줄어드는 느낌이 들어 저녁 10시 30분경 평소 진료를 받던 산부인과의원에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산부인과의원은 인신부에게 태동검사를 위해 내원하라고 했으며, 임신부는 남편과 함께 저녁 11시 30분경 산부인과의원에 도착했다.

산부인과의원 간호사는 임신부에게 태동검사(NST)를 실시했고, 당시 의사는 임신부를 대면해 진료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밤 12시 경 임신부에게 관장을 실시했고, 관장을 실시하는 동안 NST 검사가 일시 중단됐다. 다음날 새벽 12시 4분경부터 NST 검사를 재개했으며, 검사를 재개할 당시 태아의 심박수는 분당 155회로 측정됐다.

새벽 1시경 NST 검사 그래프상 태아의 심박수가 분당 80∼90회로 떨어졌으며, 의사는 새벽 1시 25분경 응급 제왕절개술을 시행했다. 신생아는 출생 직후 양수의 태변 착색이 매우 심했고, 호흡과 심박동이 없이 복부가 팽창한 상태였으며, 병원 진료기록지에는 아프가점수(출생 직후 신생아의 상태를 평가하는 방법)가 '0'점으로 기재됐다.

이후 산부인과의원 의료진은 다른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전원했으나, 신생아는 뇌성마비 장애를 입게 됐다.

이에 원고(신생아 부모들)들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임신부와 신생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태아곤란증 상태에 빠진 신생아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적시에 이뤄지지 않았다며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측은 산부인과의원 의료진들이 임신부의 태동상태를 면밀히 관찰했어야 하는데, NST 검사결과에 대한 관찰의무를 소홀히 해 신생아가 장애를 입게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산부인과 의사는 태동검사와 관장을 할 때까지 태아에는 이상이 없었고, 조산할 가능성이 있어 분만을 하기로 해 관장을 한 것이며, 의료진들은 적절하게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재판부는 산부인과 전문의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분만 과정에서 태동 및 태아심박동수의 변화를 면밀하게 측정·관찰하고, 그 변화가 있는 경우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봤다.

또 임신부가 병원에 도착한 직후 산부인과 의사가 직접 진료했다면, 신생아의 태동이 감소된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보다 이른 시기에 이뤄졌을 것으로 보면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결에 대해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7월 24일 입장문을 내고 "열악한 분만환경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혹한 배상판결"이라고 밝혔다.

직선제 산의회는 "분만이라는 본질적 위험성을 지니는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더라도 산모, 태아 및 신생아의 사망과 신생아 뇌성마비 등의 의료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실제로 2018∼2021년까지 분만의료기관 80곳이 감소했고, 이에 따라 전국 250개 시·군·구 중 42%(105곳)는 분만취약지로 분류된다.

직선제 산의회는 "분만의 낮은 수가와 낮은 출산율로는 분만병원 운영비와 직원 인건비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서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인해 받게 되는 가혹한 처벌 및 천문학적인 거액의 배상판결은 많은 분만의를 위축시키고 재정난에 빠지게 해 분만 인프라를 더욱 열악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진료실과 분만실을 지키며 환자와 국민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분만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고, 종국적으로 전국의 분만의사들에게 책임질 일이 없는 방어진료나 분만의 중단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선제 산의회는 "저수가로 인해 왜곡될 대로 왜곡되어 있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에서 고단하게 버티고 있는 의사들에게 정부는 각종 악법을 퍼붓고 있고, 사법부는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지 못한 것을 죄로 물어 천문학적인 거액의 배상판결을 내리고 있다"라며 "해당 재판부를 포함한 전국 각급 법원에서 의료분쟁 소송을 진행하는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배상 판결을 내려 줄 것"을 당부했다.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의료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A변호사는 "1심 법원은 저산소성 뇌손상이나 뇌성마비 등의 발생에 관해 피고병원 의료진의 과실 외에 다른 요인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피고병원 의료진이 산모가 최초 내원할 당시 태동감소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검사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전제했는데, 이는 산모의 최초 내원당시 태아곤란증이 존재했음을 전제사실로 하는 것으로, 태아곤란증이 내원당시 존재했다면 출생아동의 저산소성 뇌손상이나 뇌성마비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과실 외에 다른 요인이 개입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법원이 의료과실 외의 다른 원인의 개입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것.

이 사건 감정회신 인용의 부적절성도 지적했다. 원고 측이 보험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지급 소송에서 제출한 진료기록 감정 결과를 유력한 증거로 활용했기 때문.

A변호사는 "이 사건의 경우 보험금 지급 소송 관련 사건에서의 감정회신이 유력한 증거로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보험금 지급 소송 관련 사건의 경우 피고 의료진이 소송당사자가 아니어서 감정절차 진행에 대한 방어권이나 변론권이 행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 의료진이 해당 감정회신의 증거 활용에 관해 명시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이상 이를 그대로 이번 사건(손해배상청구 소송 사건)에서 활용해 피고 의료진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꼬집으면서 "2심 재판에서 이런 부분이 충분히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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