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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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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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의사법 과연 실효성은?
환자와 충분한 소통 가능한 환경 더 필요

# 작년(2020년) 11월의 일이다. 

나: "오늘은 다른 날 보다 환자들한테 좀 잘 해준 것 같지 않아요?" 

오전 진료를 마치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옆에 있던 전공의에게 물었다. 전공의도 그런 것 같다고 한다. 마침 그때 외래 진료 안내를 하는 직원이 들어온다. 

직원: "교수님, 오늘 환자분 한 분이 교수님 너무 친절하시다고, 다음에도 꼭 교수님께 진료받고 싶다고 하시면서 가셨어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나는 의사의 기본은 정확한 의사 결정과 환자와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할 뿐, 친절이 의사의 덕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은 뭐가 달라진 걸까? 

원래는 세계 가정의학회가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연초에 학회 참석을 예정해서 외래를 막아 두었었는데, 잊고 있다가 한 달 전에 발견하고 외래를 다시 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날 보다 환자수가 꽤 적어서, 서른 명 남짓에 불과(?)했다. 많을 때는 50명쯤 되는 것에 비하면 정말 여유있는 날이었다.

나: "오늘 환자가 적었잖아요. 제가 달라진 건 없어요." 

외래 직원은 오늘은 밖에서 환자 안내하는 것도 여유가 있었다며,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 그 날 환자 중에 폐암 전이가 의심되어 오신 분이 있었다. 6년쯤 전에 한쪽 폐를 절제하셨던 분인데, 추적관찰 중 반대측 폐에 2cm정도의 종양이 발견되었고 폐-폐 전이가 의심되는 분이었다. 당연히 환자분은 충격을 받으셨고, 다시 수술은 받을 수 있는지, 항암치료가 필요한지, 완치가 안되면 얼마나 살수 있는지, 그리고 심지어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안되는 지도 물어보셨다. 그나마 오늘은 다소 여유가 있어서 말해줄 수 있는 범위내에서 설명을 드렸다. 나가시는 순간까지 표정은 좋지 않으셨지만, 힘없는 목소리로 간단히 감사인사를 하고 나가셨다. 

# 얼마 전 본과 2학년 학생들에게 '환자와 의사: 의사소통' 강의로 '나쁜 소식 전하기'를 가르쳤다. 강의, Role play, 시청각 교재 등으로 구성된 강의였는데, 시청각 교재는 우리나라 영상이 쓸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 의과대학들에서 만든 동영상을 이용했다. 

강의 준비를 위해 동영상을 보고, 강의를 하면서 자괴감이 밀려왔다. 학생들에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이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을 변명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내년이면 임상실습을 돌면서 여러 교수님들 외래와 회진을 보게 될 텐데, 그리고 아마도 내 외래도 참관하게 될 텐데, 강의와 너무 다른 모습에 충격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길게 이야기한다고 의사소통을 꼭 더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강의 때 보여준 외국 동영상들도 나쁜 예와 좋은 예가 있는데, 의사소통 기술의 차이가 물론 기본적으로 차이나지만, 좋은 예는 면담 시간도 더 길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적인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반나절 외래에 50명씩, 80명씩의 환자가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미리 차팅을 하면서 환자에게 할 말들을 미리 생각해두고, 옆에 보조해 줄 사람이 있다고 해도, 환자당 2∼3분이라는 시간은 필요한 핵심만 이야기하고, 짧은 기록을 남기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 작년 말 한 국회의원이 '친절한 의사법'이라는 걸 발의했다. 환자 또는 보호자가 진단명, 증세, 치료 방법·관리, 주의사항 등을 구두로 설명받고도 충분치 않을 경우 이를 서면으로 제공해주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장을 아는 의사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바랄 만한 아이템이니 그런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이 법은 통과된다고 해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설명을 해주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면 설명을 제대로 해줄 수가 없다. 또한, 서면으로 제공하는 것을 강요하게 되면, 결국 서면으로 된 교육자료를 한 장씩 들려주거나 설명 동영상 같은 것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주는 형태로 의사들은 대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교육자료는 의사의 설명과 함께 사용되면 유용할 수 있지만, 소위 형식을 맞추기 위해서 강요되면 그야말로 형식만 채우게 될 것이다. 

실례로 말기 환자의 치료 결정을 돕겠다면서,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서식 같은 것을 만들고 이를 법제화까지 하였지만,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예전의 DNR동의서처럼 치료 포기에 대한 형식적인 문서가 되어버리고, 실제 의도한 말기 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 결정을 촉진하는 도구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 금년에는 상급 종합 및 종합병원 360여 곳을 대상으로 '환자 경험 평가' 가 진행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조사 위탁비로만 7억 5000여만원을 쓰는 사업이다. 질문의 내용은, 의사·간호사가 환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춰 대했는지, 환자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 주었는지, 질환에 대해 위로와 공감을 받았는지 등 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의 외부 평가는 자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환자들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의료인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고 싶다면,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적정한 수의 환자를 보고도 의료기관이 재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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