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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감염병 창궐하면, 의사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가?
신종감염병 창궐하면, 의사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가?
  • 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2.26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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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
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
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

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그리고 먼 나라 이야기다. 1645년 에딘버러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그 해가 조선 인조 23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소현세자가 귀국한 해이기도 하고, 몇 달 후 급사해 봉림대군이 세자로 책봉된 해이다. 소현세자의 급사에 대한 흥미진진한 역사의 뒷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오늘의 주제가 아니고, 영국의 에딘버러를 휩쓴 흑사병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럼 조선 역사는 왜 들먹였느냐? 그냥 재미로, 관심을 끌어볼까 해서 그랬다고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흑사병이 돌기 시작하자 에딘버러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너울거리고, 유행을 잡고자 의사가 파견됐다. 존 폴리티우스(John Paulitious)라는 사람이다, 현장 투입 후 얼마 되지 않아 흑사병에 걸려 죽는다. 그러자 흑사병 의사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에딘버러 시는 거액의 수당과 월급을 지급하겠다는 조건으로 의사를 구한다.

그 이면에는 우선 의사를 보내 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통치자 체면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고, 어차피 현장 투입되면 죽을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돈줄 생각은 조금도 없이 이런 약속을 했을 것인데, 두 번째 의사 George Rae는 죽지도 않고, 확산도 방지해 병을 잠재우고 돌아온 것이다. 흑사병이 사라진 것은 시민들에게는 어마어마하게 고마운 일이지만, 약속한 거액의 돈을 지급해야 하는 시당국은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Dr. Rae가 흑사병 퇴치를 위해 첫 번째 한 것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방호장치를 사용한 것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창에 '흑사병' 치고 '이미지'를 눌러보면 커다란 새 주둥이 달린 마스크에, 가죽 모자, 가죽 코트를 뒤집어 쓴 그로테스크한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이 쥐벼룩에 물리지 않도록 고안한 당시의 방호복이다.

Dr. Rae가 흑사병 치료를 위해 갖춘 안전 방호 복장. 자료출처/pixabayⓒ의협신문
Dr. Rae가 흑사병 치료를 위해 갖춘 안전 방호 복장. 자료출처/pixabayⓒ의협신문

마스크에는 여러 가지 약제를 넣어 호흡기 감염을 방지하고, 피부 노출을 완전히 막은 상태의 방호복이다. 요즘 음압격리실에 근무하는 의료진 사진을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 더 정교해지고 안전해지긴 했지만…. 그런데 그런 방호복을 실제로 입어보거나, 직접 본 의료진은 별로 없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전혀 필요 없는 장비이기 때문이다. 이게 싸구려 장비면 민간병원들이 평상시에도 많이 준비해 놓고 의료진을 늘 훈련시키고 하겠지만 경영 압박이 상존하는 민간병원이 이를 잔뜩 준비하고 팬데믹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 유효기간이 지나 장비를 파기하고 다시 마련하느라고 거액의 돈을 쓴다면, 국가와 사회와 국민이 존경해 줄까? 병원 노조가 나중에 원장님 공덕비라도 세워줄까?

그래서 이런 때를 대비해 필요한 것이 공공의료라고 나는 믿는다. 세금을 그런 쓸데없는 곳에 쓴다고 탄핵을 주장하는 편도 있겠지만, 이런 것을 다 감수하고 국가에서 비상사태를 대비해 준비해 두었다가, 현장의 의료진에게 필요시 원활하게 공급해 줘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 아닐까? 하지만, 새로운 나라를 보여주겠다는 정치적 구호는 늘 거짓말이고, 우리가 보는 것은 '늘 보던 대로, 듣던 대로, 하던 대로'이다. 

지금도 정부에서는 돈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손해는 나중에 다 보상해 주겠다고 하면서 일선의 의원과 병원에 되지도 않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의료진을 보호할 장비 지급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들이 어떻게는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의사들이 여기에 반발하거나 항의하면 자기편을 동원해서 의사는 봉사와 희생으로 똘똘 뭉쳐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요즘 의사들의 윤리가 바닥에 떨어져서 돈타령만 한다고 욕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검찰에 고발 할 수도 있겠다.

여기쯤에서 Dr. Rae가 돈을 지급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되었을 것 같은가?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결과가 짐작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현실 중 어떤 사안인지를 특정해 달라고 하면…. 

"이거 복지부가 대법원에 상고해서 진행 중인 사항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한 사건이다"라고 답 할 수밖에 없다. 벌써 정치가들의 기억 저쪽으로 사라진지 오래 된 '메르스'라는 질병으로 인해 거액의 손해를 본 대형병원이 곤욕을 치루고 있다고 힌트를 드릴 수는 있겠다. 재단이 든든한 병원이니 그나마 버텼지, 다른 대학병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마도 대학교 자체가 부도의 늪에 빠져 폐교를 논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Dr. Rae는 10년간 시당국과 돈 지급을 놓고 재판을 벌였다는 기록은 있는데, 돈을 지급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고 전한다. 미리 돈을 받았어야지, 계약금이라도…. 미련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의사들은 늘 순진하게 당하는가보다. Dr. Rae는 사기를 당했지만, 에딘버러를 구한 것은 의사다. 성주도 시장도 교구장도 사제도 아니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보고 배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목숨 걸고 현장을 지켜야 할까? 그것이 의사의 소명인가?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3차 전세기로 입국한 우리 교민과 중국 국적 가족 중 유증상자들이 12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김선경기자 photo@kma.orgⓒ의협신문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3차 전세기로 입국한 우리 교민과 중국 국적 가족 중 유증상자들이 12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김선경기자 photo@kma.orgⓒ의협신문

이런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의료진의 안전이다.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의료진은 환자를 지켜줄 수 없다.' 이것은 Dr. Rae의 예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Pandemic'을 보면, 감염 확산방지 훈련 때, 교육 담당 전문가의 첫마디이다. 그럼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정부가 주장하는 말을 절대로 믿지 말라는 것? 그건 정말로 아닌데, 왜 나는 그것 이외에 생각나는 것이 없을까?

반박하고 싶으면 '메르스백서'를 한번 뒤져보고 하시라. 기록은 무서운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모두 자랑스러운 우리의 기록 문화이다. 그렇지만 그런 기록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에딘버러 이야기에서 봤다. 지도자는 교활한 혓바닥을 놀리는 것이 아니고, 후세가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 것인지에 대해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이 필요한 시대이다. 왜곡인지 진실인지는 후세가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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