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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텅 빈' 다인실…"찾는 산모도 없는데 규제"
[현장 취재] '텅 빈' 다인실…"찾는 산모도 없는데 규제"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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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에게 다인실이란?…"내 몸 가누기도 힘든데 눈치까지…"
분만병원 다인실 50% 규정, 산모 수요 등 현실 전혀 고려 '안돼'
인천 소재 한 산부인과 병원. 다인실 병동이 텅 비어있다. ⓒ의협신문 홍완기
인천 소재 한 산부인과 병원. 다인실 병동이 텅 비어있다. ⓒ의협신문 홍완기

"다인실 찾는 산모들 거의 없습니다. 규정이라 안 지킬 수도 없고…규정을 위한 규정이죠"

A개원의(부산·산부인과)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다인실은 여러 명의 환자가 함께 쓰는 병실을 뜻한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바로 이 '다인실'이 지어만 놓고 사용되지 않는 '죽은 공간'이라 주장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산모들의 수요가 없다는 거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령에 따르면 신고한 병상이 10병상을 초과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치과병원 및 산부인과 또는 주산기 전문병원은 일반병상(다인실)을 총 병상의 2분의 1 이상 확보해야 한다.

분만 다인실 '무용론' 제기

산부인과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분만 다인실 '무용론'을 제기해 왔다고 했다. 1인실로 가기 위한 '대기 장소'로 전락한 지 오래라는 얘기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1월 1일 성명을 통해 "분만병원의 특성상 대부분 1인실을 이용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다인실 규정을 지킬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는 개원의들에게 실제 산모들의 '다인실 수요'에 대해 물어봤다.

A개원의(경기·산부인과)는 "옆 병원의 경우, 분만 다인실을 아예 창고로 활용한다고 들었다. 우리 병원의 경우, 가끔 골반염 환자 등 산모가 아닌 환자들이 하루 이틀 머물다 가곤 한다"며 "말이 다인실이지, 큰 다인실을 혼자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B개원의(서울·산부인과)는 "다인실 규정 완화 주장은 병원만 생각한 것이 아니다. 산모 입장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1인실로, 어쩔 수 없이 다인실로 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출산 후, 출혈로 인해 패드도 계속 갈아줘야 하고, 드레싱도 해야 한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분만 후 입원실의 특성상 다인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C개원의(인천·산부인과)는 "출산 산모들은 거의 99% 이상이 1인실을 원한다. 우리 병원의 경우, 출산 산모가 다인실에 들어가는 경우는 100명의 1명도 안 된다. 다인실을 쓰는 경우도 1인실에 자리가 없어, 기다리는 경우에 쓰게 된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다인실 전경. 간호사 한 분만이 텅 빈 다인실을 정돈하고 있다.  ⓒ의협신문 홍완기
산부인과 다인실 전경. 텅 빈 다인실을 정돈하고 있다. ⓒ의협신문 홍완기

실제 C개원의의 병원을 찾았다. 다인실은 역시 비어 있었다. 방금까지 골반염 수술을 받고, 입원했던 환자 1명이 입원해 있었다고 했다. 간호사 한 분만이 텅 빈 다인실에서 자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다인실은 이렇게, 출산이 아닌 부인과 수술을 받은 환자가 가끔 1인실처럼 사용하다가 비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C개원의는 "이는 산부인과의 특수성이라고 보면 된다. 산모가 원하는 1인실을 최대한으로 만들어줘야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다인실 실제 이용률은 20∼30%밖에 안 된다. 나머지 절반 이상을 항상 비워놓고 있어야 한다"면서 "시설만 갖춰 놓고, 비우기가 너무 아까워 자의적으로 용도변경을 하다가 실사에서 걸리는 경우를 많이 들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어려운 규제를 해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처벌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출산 후에, 다인실 사용 어떻게 생각해?"…어느 조리원 동기 모임을 찾았다

결국 '분만병원의 50% 다인실 규정이 산모 수요 등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이에, 분만병원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다인실 규정을 현실 수요에 맞게 낮추는 등 규제의 벽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모들의 1인실 혹은 다인실 수요' 추세를 조금이라도 엿보기 위해, 부산의 한 조리원 동기 모임을 찾았다. 이들은 모두 작년 출산을 경험했다.

홍서현(35·부산)씨는 처음 2인실에 들어갔다가 이마저도 불편해 1인실로 옮겼다고 했다.

"유축기를 사용해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소음이 꽤 크다. 괜히 미안한 생각도 들고, 손님이 올 때마다 눈치를 살피게 됐다. 이에, 2인실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바로 1인실로 옮겼다"고 회상했다.

특히 "출산 후에 '오로'라는 것이 나온다. 기저귀를 남편이 계속 갈아줬다.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아무리 커튼을 친다 해도 수치심을 느꼈을 것 같다. 다인실은 글쎄…상상도 안 된다"고 전했다.

손규수(34·부산)씨는 "나 역시 1인실을 택했다. 다인실은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당연히 출산 후에는 1인실을 쓰는 거라고 생각해 왔고, 내 주변 지인들 역시 모두 1인실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출산은 정말 큰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드는 경험이다. 만약 내가 다시 정할 수 있는 순간이 와도 1인실을 택했을 것 같다. 며칠 되지 않는 시간 온전히 쉬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이소라(34·부산)씨는 "나도 1인실을 택했다. 1인실을 선호하는 쪽이 대다수다. 신랑이 계속 옆에서 간호해주는데, 다인실이었다면 많은 부분에서 불편을 느꼈을 것 같다"면서 "아기를 낳고 나면,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얼굴 상태도 많이 초췌해서 남에게 보이기 싫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으면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형편에 따라, 입원비를 아껴서 아기용품을 사고 싶단 경제적 이유로 다인실을 선택하는 경우도 보긴 했다. 다인실이 급여가 되기 때문이다. 형편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1인실을 선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많은 산모들이 남편의 간호나 친척 등 지인들의 방문으로 다른 산모에게 피해가 갈까 봐 '눈치가 보인다'거나, 개인의 휴식을 위해 1인실을 선호하고 있는 추세라고 증언하고 있었다.

한 유명 '맘카페'에 '출산 후 다인실 사용' 과 관련한 글이 올라왔다. 1인실을 선호한다는 댓글이 다수를 이뤘다. ⓒ의협신문 홍완기
한 유명 '맘카페'에 '출산 후 다인실 사용' 과 관련한 글이 올라왔다. 1인실을 선호한다는 댓글이 다수를 이뤘다. ⓒ의협신문 홍완기

실제 유명 '맘카페'에서 다인실과 1인실을 둘러싼 문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다인실 사용해도 괜찮을까요?'나 '요새는 1인실만 쓴다던데, 추세인가요?'라는 글 등이 눈에 띄었다.

다인실을 선택했다는 댓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불편했다"는 경험을 호소했다. 다인실에서의 불편한 경험으로, 다음에는 1인실을 쓰겠다는 답변도 있었다.

온라인 역시, 1인실을 선호한다는 답변이 다수를 이뤘다. 선호 이유로는 '푹 쉬어야 하니까', '눈치가 보여서', '몸이 안 좋아, 예민한 상태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지나다니면 감염의 위험에 노출될까 봐', '좌욕도 하고, 패드도 갈아야 하는데 다인실 쓰는 게 상상이 안 간다' 등의 의견이 많이 나왔다.

앞서 2011년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진행한 '전국 산부인과 입원 산모 대상 조사' 결과에서도, 산모 84.4%는 1인실을 선호하고, 6인실 등 다인실을 원하는 산모는 6.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김동석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분만 병원의 입장에선, 해당 규정은 상당히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창고화되고 있다는 증언이 많이 있다"면서 "이에, 형식적으로 접이식 침대를 갖다 놓거나 산모 교육실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가 현지 조사에서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산모들이 다인실을 찾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느냐. 그만큼 산모들이 찾지 않아 '무용'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분만 영역과 관련해서는, 다인실 규정의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석 회장은 "부인과의 경우, 다인실 규정을 타과와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맞다. 자궁 혹이나 자궁근종 제거 등 대형화된 산부인과에선 부인과 수술도 많이 하고 있다. 산부인과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경우가 아니다. '분만'의 경우에서 필요 없는 규제는 없애자는 것"이라고 짚었다.

분만 병동과 부인과 병동의 차별적 규제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세부규정을  별도로 만들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심평원 등의 자료 등을 근거로, 세부 규정을 만들어가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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