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2)
진료실 풍경 (2)
  • 김부경 고신의대 교수(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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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경 고신의대 교수(고신대복음병원 내분비내과)

내 조그만 진료실에는 매일 수십 명의 환자들이 스쳐간다. 몇 주 또는 몇 달에 한 번씩, 수년 동안 만나고 있는 의사는 생판 남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인생에 절대 들어올 일이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환자들은 가끔 그런 나에게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주곤 한다. 전시회에 걸린 한 장의 사진처럼 내 진료실에는 환자들이 남긴 수많은 인생의 한 컷이 남아있다. 

<두 번째 컷>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작년까지는 혈당이 아주 좋았는데, 올해는 계속 별로 안 좋아요."
"우리 둘째가 속을 썩여서…. 나는 시골에 가있으면 혈당이 좋고, 집에 오면 다시 안 좋아져요. 그래서 나는 시골에 가 있고 싶은데, 둘째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요."
"왜요? 둘째가 몇 살인데요?"
"대학생인데…." 
"에이~, 대학생이면 무슨 걱정이예요? 그냥 혼자 알아서 지내게 놔두고 시골에 가시면 안돼요?"
"그게 안돼요. 맨날 저리 술을 마시는데 혼자 못둬요."
"대학생이면 술도 좀 마시고 그러겠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애가 맨날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니까…."
"아~, 여학생이예요? 뭐 속상한 일이 있나 봐요. 여학생이 매일 그렇게 술을 마시지는 않을 텐데…."

나는 그냥 남자친구랑 헤어졌겠거니, 잠시면 시간이 지나면 되니 너무 걱정 마시란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거다. 갑자기 아주머니 눈에서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사실은 지 오빠가 작년에 먼저 갔어요."
"아…."

내 눈에서도 울컥 뜨거운 것이 솟았다. 얼른 의자를 돌려 책상 뒤편 창가에 있는 휴지를 집었다. 할 수 있는 말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집어 든 휴지 한 장을 건네주는 것 밖에…. 나도 자식이 있는 부모다. 뜻밖에 오빠를 잃고 매일 술을 마시는 20살 소녀가 떠올랐다. 그런 자식을 나무라지도, 그런 자식 앞에서 울지도 못하는 엄마의 마음 때문에 가슴이 꾸욱 조여왔다. 그 짧은 순간만이라도 자식도 아닌, 가족도 아닌, 남도 아닌 의사 앞에서 맘 편하게 눈물을 흘렸으면 했다. 

<세 번째 컷> 

'어선 전복, 실종자 수색 중'
서울로 가는 KTX 복도 천정에 매달린 모니터에 한 줄 뉴스가 지나간다. 
'그 분은 남편 시신을 찾았을까?' 
문득 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신장 이식을 받은 후 면역억제제를 쓰면서 당뇨병이 생긴 분이다. 신장 이식을 받으신 분이라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셨다. 처음에 쓰던 인슐린도 끊고, 먹는 약도 거의 다 줄이고도 몇 년 동안 정상 혈당을 유지했다. 어느 날 진료실에 들어오신 환자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역시나 혈당도 많이 올랐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우리 남편이 배를 타는데, 남편이 타고 나간 배가 실종됐어요. 아직 연락이 없어요."

환자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입에서 나오는 어떤 위로의 말도 가볍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말이라는 것이 참으로 하찮았다. 얼마 뒤 남편의 장례식을 치렀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 얼마 뒤에는 혈당도 안정을 되찾았다. 

거친 풍랑처럼 요동치던 혈당 그래프가 요즘은 다시 잔잔한 바다처럼 안정적인 직선 형태를 그리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남편을 삼킨 바다 한가운데 그분도 함께 있었던 것이겠지…. 

나는 끝내 남편의 시신을 찾았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 이야기를 꺼내 물어보진 못하겠지만, 어선이 전복되고 실종자를 수색한다는 뉴스를 볼 때 마다 그 분의 얼굴이 떠오를 것 같다.

그 분 역시 바다를 볼 때 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겠지.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하고 바다에 뭍은 그 얼굴.

<네 번째 컷> 다음편에 계속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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