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과 산후풍
중풍과 산후풍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08.18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풍' "실체가 없는 개념"

질병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환자에게 피해를 입힌다. 현재는 뇌졸중으로 인한 마비 등의 증상이 뇌가 손상돼 발생한다는 사실이 상식이지만, 예전에는 한의학적 진단명인 '중풍'이라고 알고 한방 치료를 찾는 환자들이 많았다.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안전성·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에 돈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언론에서는 뇌졸중에 대해 한의학적 원인을 진지하게 다뤘다. 

1995년 동아일보에는 '중풍 기혈 균형 잡아줘야 호전'이라는 제목의 한의대 교수의 글이 실렸다. "한방에서 보는 중풍의 원인에는 우선 기후나 계절적인 조건인 풍이 있다. 또 심적인 갈등이나 스트레스인 화, 몸속의 진액이 변질된 담음이 있다. 이밖에 노화현상인 기허, 과음 과식 또는 비만에 따른 습담 등이 있다"고 원인을 설명하고 "몸속의 기혈을 순조롭게 잘 순환시켜 심신의 균형을 잡아주는" 한약 치료를 한다고 설명했다. 

1996년 경향신문의 '생활 한방 중풍 원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몸 안에서 내풍이 불어 풍을 관장하는 장기인 간의 기운이 허약해진 결과 신장의 기운이 떨어지고 건강관리와 양생을 소홀히 해 심화 조절이 잘 안 되면 화의 장기인 심장의 기운이 떨어져 중풍이 발병"한다고 설명했다. "양의학의 뇌줄중은 뇌가 막히거나(뇌경색) 터져서(뇌출혈) 발병하는 병이지만 한의학의 5대 중풍 원인을 보면 뇌를 직접 겨냥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실제로 한방에서는 중풍을 뇌에 국한되는 병으로 보지 않고, 전신허약에서 유발되는 질환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한방 원리에 입각한 한방 치료를 강조했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hanmail.netⓒ의협신문

중풍을 설명하는 한의학의 개념들은 실체가 없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한의학에서 이루지 못한 목표를 언제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한의학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2015년 <2040 한의약기술예측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기·혈·진액 등 한의학적 생리에 대한 과학적 기전이 규명된다", "담음 및 어혈 등 한의학적 병리에 대한 과학적 기전이 규명된다" 같은 문항이 담겨 있다. 한의학의 토대가 되는 개념들조차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한방 관련 기사에서도 중풍보다는 뇌졸중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며, 원인에 대해서 한의학적 설명을 서술하는 기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중풍에 대해서는 상식 수준이 높아져 한의학적 설명이 설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산후풍'은 한의학적 설명과 한방 치료를 주장하는 기사나 한의원 홍보 컨텐츠들이 많다. 

산후풍에 대해 한 한의학 박사는 방송에서 "출산 후 산후조리를 잘못하여 발생하는 질병"이며, "출산 후 기혈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증상으로는 "특정 부위나 전신이 차고 시림, 관절 경직과 통증, 땀 과다, 감각장애, 기력 저하" 등을 나열했다.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서는 출산 7일 이후부터 21일까지 산후보약 복용이 바람직하다며 "산후조리를 잘못하거나 기혈이 부족하면 온몸이 쑤시고 결리면서 찬바람이 든 것처럼 관절마디가 시린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산후풍"이라고 설명했다.

한의학의 '풍'이라는 개념은 실체가 없다. 한의학적 진단은 대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의사에게 산후풍이라고 진단받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산후갑상선염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산후갑상선염은 분만 직후가 아닌 3∼6개월 뒤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들이 산후 조리에 원인이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산후조리의 문제는 아니며, 어떤 경우 산후갑상선염이 발병하게 되는지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014년 대한갑상선학회지에 발표된 '임신 중 및 산후 갑상선질환의 진단 및 치료 권고안'에 따르면 산후갑상선염은 전형적으로는 갑상선중독증,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순차적으로 나타난 뒤 정상으로 회복되는데, 갑상선중독 증상만 나타나거나 갑상선기능저하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으며, 10∼20%는 회복되지 않고 영구적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남는다고 한다. 

산후풍의 진실은 널리 퍼져 있지 않아서 환자들이 증상을 다스릴 수 있는 치료를 선택하지 못하고 한방 치료에 돈을 쓰다가 병이 저절로 나으면 한방 치료 때문으로 착각하기 쉽다. 영구적 갑상선질환으로 진행된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뺏기고 오랫동안 엉뚱한 치료에 많은 돈을 낭비할지도 모른다.  

질병에 대한 잘못된 설명은 누군가에게 부유한 삶을 누리게 해주겠지만 환자들에게 고통을 준다. 실체가 없는 한의학적 개념들을 뿌리 뽑고 진실을 이식해야 국민의 고통을 덜 수 있을 것이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