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간
가난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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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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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간

빈집에 놓인 탁자에 빈 물병을 놓으면
허물 벗은 시간이 뛰어들어 간다.
시간을 가두어둔다고 해도
지하 철도 개찰구에 카드를 대면 문이 열리고
내가 붙잡고 있던 시간들이 잘게 부서져 날아간다.
시간은 물고기이다. 잡으면 미끄러져 달아나는
다친 새가 시간의 알갱이를 정확히 쪼고 있다.
슬픔에는 방향이 없다.
단지 가슴 상처의 깊이만 있을 뿐이다.
다시 바라보면 시간은 가난하고 불쌍하게 보인다.
가난한 시간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사람들이 재가 되어 날려간다.
날아간 시간을 찾으러 집 밖을 나선다.
여행기(旅行記)의 사진이 시간을 잠시 잡아둔다.
시간이 들고 있는 햇살이 하프를 연주한다.
먹구름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덕수궁 대한문(大漢門)앞에서
열한 시가 열두 시를 만나 수문장(守門將)교대를 한다.
시간을 내동댕이쳐봤자 시간은 바로 튀어
시계 안의 제자리에 가 앉는다.
그러나 시간을 만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침묵 속에도 강물이 흐르고 꽃잎이 흐르기 때문이다.
시간을 택시에 태울 수는 없다.
시간은 항상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 천 개의 발을 가진 시간을 보면 눈물이 난다.
도마 위에 놓여 있는 토막 난 물고기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간의 흔적이다. 

김경수
김경수

 

 

 

 

 

 

 

 

 

 

부산 김경수내과의원장/<현대시> 등단(1993)/시집 <하얀 욕망이 눈부시다> <다른 시각에서 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달리의 추억> <산 속 찻집 카페에 안개가 산다>/<시와사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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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9-02-12 08:21:26
김경수 시인의 시는 체험적 현실에 바탕을 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