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가린샤와 하석주
청진기 가린샤와 하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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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0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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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의협신문
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의협신문

흥분한 관중들이 돌을 던진다. 선수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재빠르게 빠져나간다. 하지만 이내 온몸에 피멍이 들고 스타킹에 핏물이 배어든다. 그는 결승행을 갈망하는 홈팀을 절망에 빠뜨렸다. 두 골을 넣은 그에게 홈팀은 더 거칠게 대했다. 스포츠 정신도 없었다. 결국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상대를 가격한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레드카드와 관중들의 돌 세례였다.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고 퇴장하는 선수에게 붙여지는 '가린샤 클럽'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가린샤는 브라질 축구의 영웅 '마누엘 프란시스코 도스 산토스'를 지칭하지만, 원래 가린샤는 아열대 우림에서 사는 갈색의 작은 새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어렸을 때 돌로 이 새를 잘 떨어뜨렸다 하여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가린샤! 그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건가'

1962년 칠레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자 신문들은 온통 가린샤 얘기로 도배됐다. 유력한 축구 전문지는 그를 외계인으로까지 승격했다. 가린샤는 준결승전에서 퇴장 당했기에 사실 결승전에 나설 수 없었다. 하지만 브라질 축구협회가 강력하게 항의(상대팀의 비 매너 강조)하고 결승 상대인 체코가 용인하자 FIFA는 규정까지 바꿔가며 출전을 허락했다.

결승전에서 그는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체온이 39도까지 오르는(돌팔매질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악조건 속에서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결국 최다 득점상과 MVP(비공식)를 수상하면서 조국인 브라질에 우승컵을 바쳤다. 더구나 그 우승은 축구 황제 펠레의 부재 속에서 이룬 것이기에 더 높게 평가받았고, 그의 전력(前歷)이 알려지자 팬들은 감동했다. 

가린샤는 6세 때 소아마비(추정)를 앓았지만 가정 형편상 치료를 받지 못했다. 다행히 무료로 수술해준 의사 덕분에 나았지만 한쪽다리가 3cm 짧았고 양쪽 다리 모두 바깥쪽으로 심하게 휘었다. 그래도 그는 그 다리로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축구를 즐겼고 부단한 노력 끝에 결국 '드리블의 신' '세계 최고의 오른쪽 날개'라는 찬사를 받게 됐다. 1958년 펠레와 함께 스웨덴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됐고,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만개했던 것이다. 

왼 발로 감아 찬 볼이 튀어 오른 수비수 머리에 닿아 굴절됐다. 그 볼은 골키퍼를 울리고 네트 구석에 꽂혔다. 우리나라 월드컵 도전 역사 중에 최초의 선제골이었다. 첫 승 염원이 실린 그 골에 목이 터졌고 방바닥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그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인 3분 만에 골을 넣은 영웅은 고개를 숙이며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탄식이 메아리 되어 아파트 전체가 내려앉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첫 경기. 멕시코와의 경기 장면이다. 주연은 가린샤 클럽에 새로이 합류한 하석주.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강호 스페인과 2:2로 비기면서 다음 대회에서는 1승이 가능해 보였다. 스타 출신인 차범근 씨가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고, 도쿄대첩으로 일본을 누를 때는 서광이라고 믿었다. 본선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을 때는 목표를 16강으로 수정해야 했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1승에 대한 염원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달래지 못했다. 백태클을 하면 경고 없이 붉은 딱지를 주겠다는 규정도 잊어버렸다. 3:1 역전패. 그리고 히딩크의 네덜란드에 5:0 패배. 차 감독의 불명예 퇴진. 하석주 선수에게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조용히 지내던 그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멕시코와 같은 조에 편성되자 새삼 주목받았다. "조 추첨 결과를 보고 기분이 묘했다. 아직도 1998년 기억이 선명하다. 착잡한 기억 뿐"이라며 입을 열었다. 차분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니 세월은 진정 무심한가보다. 그렇다고 어찌 흔들리지 않겠는가. 평생 가슴 아린 기억이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구의 잘못 이라기보다 그렇게 되어버렸던 것이 아니었던가.

가린샤는 50세에 알콜성 간 경변으로 세상을 떴다. 칠레월드컵 이후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은 그는 그 축제를 너무 오래 즐겼다. 술과 여자에 빠진 방탕한 생활이었다. 결국 이혼당하고 양육비로 날리고 빈민촌에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애도했다는 것은 그에 대한 팬들의 사랑을 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떠난 자는 알 수 없는 일. 가린샤의 끝은 너무 쓸쓸 했다. 

반면 축배에 입 맞추려다 곧바로 토해버린 하석주는 올해 나이가 50이다. 현재 아주대학교 축구팀 감독이다. 실의에 빠진 선수를 다독일 줄 아는 그는 20년 만에 만날 멕시코전을 손꼽아 기다린다. 만감이 교차할 그가 바라는 것은 단지 승리만이 아닐 것이다. 자기처럼 아픈 후배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것이고, 설사 실수가 있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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